<에르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안녕하세요,
안붐 키키입니다.
오늘은 제가 그림책에 빠져들게 만들어 준 그림책
존 버닝햄 작가의 <에르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앞표지입니다.
에르와르도의 모습이 어떤가요?
요새 말로 육아 난이도 최상일 것처럼 생겼지요? ㅎㅎ
에르와르도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책장을 넘겨 볼까요?
에르와르도는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꼬마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에르와르도는
시끄러워서, 어린아이들을 못살게 굴어서,
동물들을 괴롭혀서,방을 정리하는 솜씨가 서툴러서, 깨끗이 씻지 않아서 어른들에게 혼이 납니다.
어른들은 에르와르도에게 낙인을 찍습니다.
시끄러운 아이, 심술궂은 아이, 사나운 아이, 지저분한 아이라고 말이죠.
에르와르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착한’ 아이가 되었을까요?
며칠이 지나 몇 주가 되고, 몇 주가 지나 몇 달이 될수록, 에르와르도는 점점 더 눈치 없이 굴고,
사나워지고, 시끄러워지고, 방을 어지르고, 지저분해지고, 못되게 굴고 버릇없이 굴었어. 결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지
<에르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중
세상에서 제일가는 말썽쟁이
어째서일까요,
어른들의 꾸중을 그렇게 듣고도
에르와르도가 나아지지 않는 것은
에르와르도가 절대 변치 않을 못된 아이이기 때문일까요.
그러던, 어느 날
에르와르도에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어른들의 말이 바뀌었습니다.
“에르와르도 너는
정원을 잘 가꾸는 아이, 동생을 잘 돌보는 아이, 청소를 잘하는 아이, 가장 깨끗하고 단정한 아이 구나! “
왼쪽은 비난을 들을 때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칭찬을 들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에르와르도의 표정, 몸짓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사실, 혼이 나고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화가 끓어오르지요?
나의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피오오르고
자꾸 반복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에르와르도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의 훈육(이라 스스로 일컬었던 행동)이
아이를 더더욱 못된 아이로 고착시켰던 것은 아닐까 하고요.
아이가 스스로를 나쁜 아이라 여기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아이의 미숙한 행동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어른으로서 해야 할 나의 역할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이렇게 말하신 적이 있어요.
아이를 혼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요.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알려주는 것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왜 그리 쉽지 않을까요?
첫째가 다섯 살쯤
얼굴이 터져나가게 울며 떼를 쓰는데
진이 빠져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어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린 시절 똑같이 울고 있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섯 살의 나는 그저 아빠가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길 바랐는데,
아빠는 왜 나를 혼내는 거지?
목구멍에 말이 가득 찼지만 울음만 나오던 그때의 나처럼 지금 나의 아이도 같은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상황에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는 것은
그 시절의 내가 위로받지 못한 것을 대물림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며 나를 키운다는 말이 참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에르와르도는 여전히
때때로 어수선하고, 사납고, 지저분하고,
방도 어지럽히고 눈치 없이 굴고, 시끄럽게 떠들고, 못되게 굴고,
버릇없이 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르와르도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이지요.
저희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아무리 장난꾸러기이고, 말썽을 부리고,
까불어도 너희를 사랑해. 너희는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아이야.
아이는 어른들의 말을 먹고 자라는 것 같습니다.
다정한 말들로 아이를 가득 채워 주는 일
그것이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에르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를 읽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질문!
다섯 살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아이와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