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등
쿵.
띠— 띠— 띠리리.
지민은 그 소리를 등으로 들으며 신발을 벗는다. 불을 켜지 않는다. 켜지 않은게 아니라 그냥 손이 그쪽으로 가지 않았다. 침대까지는 다섯 걸음. 아무런 생각없이 몸은 이미 침대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번 상반기 채용 방향을 다시 한번 짚어보자면—"
팀장의 목소리가 처음 울린건 오후 두 시였다. 지민이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네 시가 넘어 있었다. 두 시간이었다. 지민이 화이트보드에 가장 많이 썼다. 마커 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팀장이 말했다.
"역시 김 대리야."
옆자리 이 과장이 거들었다.
"김 대리 없으면 우리 팀 어떻게 됩니까, 진짜."
웃음이 돌았다. 지민도 웃었다. 어렵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웃는 건 언제나 어렵지 않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오니 밀린 업무가 쌓여 있었다. 저녁을 먹을 틈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 잊었다. 시계를 다시 봤을 때 여덟 시였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이 몇 없었다. 지민은 가방을 챙겨 나오면서 회사 건물 1층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 하나, 캔커피 하나. 계산하면서 카드를 꺼내는데 진동이 왔다. 엄마였다. 나중에 전화할게, 라고 문자를 보냈다. 나중에가 언제인지는 쓰지 않았다.
신도림역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면서 이어폰을 꽂았다. 플레이리스트는 세 달째 같은 순서다. 바꿔야지, 라고 생각한 적은 있는데 바꾼 적은 없다. 그저 알고리즘에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리면 좋아요를 누를 뿐이다.
플랫폼에 사람이 많았다. 스크린도어 앞에 섰다. 앞사람의 뒷모습을 봤다. 그 사람도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그 옆 사람도. 지민도. 지하철이 들어왔다. 문이 열렸다.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웠다. 당연히 차가웠다. 금속이니까. 그런데 오늘은 차갑다는 게 느껴졌다. 어제도 잡았을 텐데. 그제도. 3년 동안 매일 잡았을 텐데. 오늘 처음으로 차갑다는 걸 느꼈다는 게 이상한 건지, 매일 잡으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이상한 건지. 지민은 그 생각을 생각이라고 부르지 못한 채 신림역에서 내렸다.
집에 돌아오면 지민은 두 가지를 한다.
신발을 벗는다.
침대에 눕는다.
그게 전부다. 오늘 사온 편의점 봉투는 테이블 위에 던지듯 놓았다. 나중에 먹으면 되니까. 나중에가 언제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불을 켜는 일은 없다. 핸드폰 불빛이 있으면 충분하다.
아무런 생각없이 쇼츠를 켰다. 손가락이 위로 올라갔다. 누군가의 여행 영상. 올라갔다. 강아지. 올라갔다. 요리. 올라갔다. 멈췄다.
누군가의 퇴사 영상이었다. 짧은 영상이었다. 자막이 떴다.
'회사는 저 없이도 잘만 돌아가더라고요.'
지민은 엄지손가락을 올리지 않았다. 내리지도 않았다. 영상이 끝났다. 다시 재생됐다. 또 끝났다. 또 재생됐다. 지민은 그냥 뒀다. 몇 번이 지났는지 세지 않았다. 자막이 반복됐다.
'회사는 저 없이도 잘만 돌아가더라고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이 어두웠다. 당연히 어두웠다. 불을 안 켰으니까.
"역시 김 대리야."
지민은 그 말을 오랫동안 직장생활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잘하고 있다는 증거. 여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 처음 입사했을 때, 선배가 말했다. 인사팀은 사람을 보는 팀이야.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해. 지민은 그 말을 성실하게 따랐다. 면접에서 지원자의 눈을 봤다.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려 했다. 잘 됐다. 나름대로.
그런데 오늘 회의가 끝나고, 화이트보드를 지우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나를 볼 줄 아는 걸까.'
지운 자리는 깨끗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새 보드처럼. 지민은 그 하얀 면을 한참 봤다.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김 대리, 오늘 수고했어요."
지민이 돌아섰다.
"감사해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렵지 않았다.
핸드폰 화면이 켜지면서 진동이 울렸다. 엄마였다. 밥은 먹었어? 지민이 답한다. 응 먹었어. 삼각김밥이었지만, 그건 쓰지 않는다. 엄마가 답한다. 잘 자. 지민이 답한다. 응 엄마도.
대화창을 닫는다. 다른 대화창을 연다. 대학 동기 단톡방. 누군가 주말에 모이자고 했다. 스물두 개의 답장이 달렸다. 지민은 읽었다. 답장을 쓰려다가 — 안 썼다. 나중에. 나중에 쓰면 되지.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천장.
어둠에는 깊이가 없다. 그냥 어둡다. 지민은 그 어둠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되감는다.
아침 알람. 출근. 회의. 야근. 편의점. 지하철. 현관문. 침대.
잘 해냈다.
오늘도.
근데 뭘?.
그 생각이 처음으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보통은 잘 해냈다, 에서 끝났는데. 오늘은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가 붙었다. 지민은 하루가 마무리된줄 알았으나 마무리 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어서 생각을 멈췄다. 멈추는 것도 익숙했다.
눈이 감긴다.
테이블 위 편의점 봉투는 그대로다. 결국 나중에는 오지 않았다. 방은 어둡다. 처음부터 어두웠다. 불은 오늘도 켜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불이 켠게 언제인지 지민은 기억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