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잡이

3. 어둠

by 스테켈

쿵.

띠— 띠— 띠리리.


늘 그랬듯이 어둠이었다. 지민은 신발을 벗었다. 침대까지 다섯 걸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 번째 걸음에서 발이 멈췄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멈춰졌다.


몸도 낯선 것을 알기라도 한듯, 팔이 벽으로 향했다. 손이 스위치 앞에 갔다. 닿지는 않았다. 스위치는 현관 오른쪽 벽에 붙어 있었다. 몇 년을 살면서 한 번도 켠 적 없는 것, 켜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는 것, 그런데 오늘은 손이 먼저 갔다. 그러나 누르지 않았다.


켜면 되는데. 손가락 하나만 올리면 되는데. 켜지 않았다. 아니 켜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방에 불이 켜진 걸 본 적이 없었다. 수많은 형광등 아래에서 광합성을 마치고 퇴근하면 보이는 어둠, 지민에겐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손을 내렸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지민은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이 켜졌다. 어느새 300이 넘은 카톡 알림들을 무시한 채 유튜브 앱을 누르려다 멈췄다. 그냥 화면을 봤다. 아무것도 안 켜고. 밝은 화면과 어두운 방. 지민은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몰랐다. 어느덧 핸드폰 화면은 꺼지고 어둠이 다시 돌아왔다. 좀 전보다 더 어두운 것 같았다. 눈이 익숙해지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지민은 신경쓰지 않았다.


지민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침대에 몸을 맡겨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색인지 아이보리색인지 기억도 안나는 어두운 천장, 늘 보던 천장은 오늘은 달리 느껴졌다. 하지만 뭐가 달라졌는지는 모른다. 천장, 방, 그리고 지민 그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러나 오늘 이 어둠은 지민에게 달리 느껴졌다. 퇴근하면 자연스레 불을 켜지 않는것, 켜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것은 지민에게 주어진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켜야되나라는 생각을 하게된 그 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 지민에게 매우 낯선 어둠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한 어둠과 선택하지 못한 어둠, 같은 어둠이지만 그 둘의 무게감은 너무도 달랐다.


그때, 핸드폰 진동과 함께 화면이 밝게 빛났다. 지민의 엄마였다.


'밥은 먹었어?'


'아직'


이라고 썼다가 지민은 바로 지우고 다시 보낸다.


'응'


먹지 않았다.


'그래 항상 잘 챙겨먹고, 잘 자.'


'응. 엄마도'


지민은 알고 있었다. 이 다정하고 불편한 대화를 감정 소모 없이 빠르게 끝내는 확실한 방법을, 그리고 이 한 번의 대화로 못해도 일주일동안은 같은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와의 대화창을 닫았고 상단에 있는 대화창들을 하나씩 열었다. 그리고 바로 닫았다. 주말에 모이자는 말, 직장 상사에게 당했던 스트레스, 곧 결혼을 앞둔 친구들의 호들갑 모두 열고 바로 닫았다. 나중에 다시 봐야지라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손가락은 먼저 움직였다.


평소의 지민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민은 나갔던 단톡방을 하나씩 다시 들어가본다. 단톡방을 열고 주말에 모이자는 말에 본인의 캘린더를 확인해보고 오늘은 답장을 쓰려다 다시 멈췄다. 쓰고 싶은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다. 갈게, 이 짧은 두 글자를 손가락은 쓰지 못했다.


결국 수많은 알림을 모두 없애는 일상을 유지한채 답장을 보내지 않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지민은 다시 어둠으로 몸을 덮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듯 오늘 하루를 되감았다. 아침 알람, 출근길 지하철, 탕비실, 회의, 초과근무, 하지만 오늘은 편의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 현관문 그리고 스위치


스위치, 왜 불을 켜지 않았을까. 왜 못 켰을까. 낮부터 이어진 환함이 지겨워서, 켜면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켜도 되는지 몰라서 지민은 그 이유를 여전히 찾지 못했다.


회사에서 김 대리는 안다. 뭘 해야 하는지. 누가 시키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서는 뭘 해야하는지 모른다. 집에서는 시키는 사람이 없으니까. 집에서 김 대리 그리고 지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나는 나한테 뭘 해줘야 하는걸까. 회사에서는 회사를 위해 팀을 위해 조직을 위해 뭔가를 해야하는지 알지만 집에서는 김 대리는 아니 지민은 김지민을 위해 뭘 해야하는지 몰랐다.


'나는 나한테 뭘 해줘야 하는 걸까.'


라고 천장을 마주보고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대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찾고 싶은지도 몰랐다. 그냥 오늘 하루 낯선 질문들이 어둠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눈이 감겼다.

작가의 이전글[소설] 손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