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해방촌
영국과 유럽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난 다시 해방촌으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해방촌은 내가 떠날 때보다 더 번잡해진 듯했다. 못 보던 가게들이 많이 생겼고, 여기저기 공사 도 많이 하고 있었다. 전에 알던 외국인 친구들도 그사이 해방촌을 떠났다.
해방촌 집에 돌아왔지만 언니는 그대로 살고 있었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몸과 마음이 떠났는데 다시 그 집에 들어갈 수 없던 나는 친구네 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이미 1년 동안 유럽과 영국에서 캐리어 하나로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기에 그런 삶도 나쁘지 않았다. 어딜 가나 마음이 편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사람은 어떤 환경이든 적응하게 되어 있나 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환경을 바꿔 보면 상황이 바뀔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님을 알았다.
한국에서 1년 간의 공백이 있었던 나는 당장에 돌아와서 할 일이 없었다. 하던 일을 다 포기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뮤지컬 강의 연락이 와서 간간히 다니곤 했다. ‘결국 그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떠난 거야?’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인생이 시간과 돈만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님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그로 인해 경험이란 걸 했고 그 경험은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일이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일들이 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기회비용도 따져보고 뭐가 더 이득일까 계산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 그 계산대로 척척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행동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무조건 행동하면 방법은 생기고 생각한 방향대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같아 보이는 나도 계산을 하다가 하지 않은 일들이 있다. 저지른 일보다는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더 남는 법이다. 그러니 이것저것 재지 말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바로 나중에 덜 후회하며 사는 방법이니까.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난 그때 굳이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어 지방에 계신 부모님 댁에서 머물게 된다. 열아홉 살에 집에서 나와 독립을 했고, 십여 년 정도 넘게 난 혼자, 그리고 언니와 살았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1년 동안 타지에서 떠돌던 생활로 인해 시골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디에서 살든지 만족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갖게 했다. 어렸을 땐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시골이었는데, 오랜 시간을 떠나 있다가 다시 와서 보니 시골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난 그때 아주 중요한 삶의 진리를 깨닫는다. 어떤 문제든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해결 방법을 모를 땐 잠시 시간을 가지고 멈추거나, 우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 최고의 해결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맞닥뜨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그때를 기다리는 것도 좋다. 때가 오면 자연스럽게 해결을 하기 위해 어떤 시도든 하게 될 테니까. 중요한 건 시도 자체로 해결의 반 정도까지는 도달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기다림의 끝에 언니와 대화를 시도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서로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어떤 행동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고 내 삶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언니와의 대화 끝에 서로 정리할 걸 정리하고, 언니가 집을 나가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의 난 서울보다는 시골에서의 삶이 좋아지고 있었다.
언니가 이사를 하고 난 해방촌 집으로 와서 새로운 마음으로 셀프 집수리를 했다. 2박 3일 동안 아빠와 투닥투닥하며 도배와 페인트칠과 싱크대까지 다 새로 했다. 수리를 하면서 참 여기서 오래도 살았구나란 생각을 했다. 한 겨울이어서 좀 수리를 하는데 힘들긴 했지만, 다 하고 나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난 그 당시 지방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지방에서 영어 학원 오픈에 나선 것이다. 많은 준비를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 학원을 오픈하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어느 순간 보니 오픈을 하고 있었다. 온 가족이 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야 될 일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게 되나 보다. 나의 전공을 살려 영어와 뮤지컬을 함께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나중에 보니 내가 예전에 드림리스트로 썼던 목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리를 한 해방촌 집은 한 동안 비워둔 채로 있었다. 한동안 나는 학원 오픈 준비에 바빠 서울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에서 일을 하던 친구가 한국에 들어와서 잠시 있을 곳이 필요해서 거주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만족하며 살던 나 또한 어느 순간 답답함이 들었고, 콧바람이 절실해졌다. 그 이후 난 주말마다 서울에 오게 되고, 해방촌 집은 사랑방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