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일주일 중 지방에서 4박을, 그리고 서울에서 3박을 하는 삶은 조금 피곤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때 친구는 막 연애를 시작하고 있었다. 평소 남자라면 담을 쌓고, 관심도 없던 그녀가 연애를 하면서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연애로 시작해서 남자로 마쳤다. 난 여러 번의 연애 경험으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심하게 겪고 이제는 누구에게도 마음을 크게 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에도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래서 누구와 자주 대화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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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 날 나의 오랜 외국인 친구가 사랑방에 놀러 왔다. 그런데 그도 연애를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어디서 만났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데이팅 앱’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광고도 하고 보편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데이팅 앱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국인보다는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친구 찾기 용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던 시기였다. 스마트폰에 바로 앱을 설치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사용하는 것도 아주 간편했다. 거리와 나이를 설정하면 그에 해당하는 남자들 사진이 나온다. 한 번의 터치로 좋아요나 싫어요를 표현할 수 있다. 서로 좋아요를 누르면 매치가 되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처음엔 ‘뭐 이런데 다 있어!’ 했는데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터치 하나로 나의 운명을 걸진 않겠지만, 가벼운 만남을 하기엔 좋은 앱인 것 같았다.


대부분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는 “HI, HOW ARE YOU?” 로 시작을 한다. 내가 있는 장소의 특성상 추천되는 남자들이 외국인들이 많았다. 어떤 사람은 사진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부터 한다. 메시지에 복사한 듯한 느낌이 들면 일단 패스! 인사를 건넨다고 만남으로 다 이어지는 건 아니고 몇 주 동안 연락을 하며 지켜본다. 호감이 간다고 바로 만나진 않는다. 1주나 2주 정도 지켜본 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면 그래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니 오프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확률은 더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뭐 정말 가볍게 생각해서 잠깐 시간을 보낼 마음으로 만난다면 언제든 만남을 해도 되겠지.


사실 온라인 앱이라는 특성 때문에 의심은 많이 갔지만, 1%는 나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 확률을 믿고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에 앱을 시작하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적극적으로 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주말에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크리스란 친구를 만났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앱을 이용해서 처음 만나는 것이었기에 나름 긴장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말이 잘 통했고, 편안했다. 처음 만나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주 세심하게 새우를 발라줄 정도로 그는 세심했다. 그리고 우린 두 번, 세 번을 만났다. 세 번째 만났을 때 크리스는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그렇게 우린 연인이 되었다.


마음을 졸이며 밀당을 하던 전의 연애 패턴과는 다르게 너무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원래 이런 게 진짜 연애이거늘 그동안 왜 힘든 사랑만 자처하며 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내 사람이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인가.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만났다. 그리고 크리스는 미국으로 3주 동안 다녀와야 하는 일정이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3주 후에 우리의 관계가 결정 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그 친구는 하루도 미국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을 해 왔다.


한국에 다시 와서도 우린 안정적인 연애 패턴을 이어갔고, 진짜 인연을 만난 건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찰나! 그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폭탄 발언을 했다. 자신은 이혼을 했는데 현재 서류상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했다. 생각해보니 처음 만난 날,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담으로 “혹시 애가 있는 건 아니지?”라는 질문은 했는데 “혹시 결혼했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뿔싸!


그는 구구절절 말을 이어갔다. 몇 주 내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거라고. 그러더니 또 폭탄 발언을 한다. 5년 전에 뼈 암 수술을 했는데 재발률 때문에 약을 먹는다고. 그는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런데 이 모든 게 왜 갑자기 터지는 거지? 그래도 한동안 계속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떤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 헤어졌다.

그즈음 나의 싱글 친구 두 명에게 이 앱을 소개했다. 그녀들도 처음 이 앱을 봤을 때의 나처럼 신기해했고,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1%의 가능성 때문에 앱을 통해 남자를 만났다. 멋모르고 시작했을 때 행운이 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계속하다간 늪으로 빠지게 된다. 도박과 같이 말이다. 이 앱이 그랬다.

한 친구는 세 번 연이어 유부남에게 걸려들었다. 그는 고양이와 강아지와 같이 산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굉장한 메타포였다는 걸! (고양이는 아내였고, 강아지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남의 사진을 도용해서 사기를 치려고 한 남자에게 걸려들 뻔했다. 친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탐정 기질을 발휘하여 사기꾼이란 걸 알아냈다.


데이팅 앱을 통한 몇 번의 만남 끝에 우리는 앱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고 일제히 삭제를 했다. 이렇게 점점 포기하는 게, 아니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많아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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