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어쩌다, 해방촌

by 조헌주

지방에서 학원을 운영하며 두 집 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이렇게 또 시간이 빨리 흐를지 몰랐다. 방송 작가를 하고 있는 친구는 중국에서 자리 잡을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류 문화가 급속도로 중국에 퍼지고 있을 때여서, 방송계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중국 시장으로 많이 진출하고 있었다. 친구는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가면서 있던 집을 처분하고 떠났다. 그런데 1년 만에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이렇게 1년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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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해서 평일엔 지방에서, 그리고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평안했던 나의 시골 생활은 주변에서 생기는 여러 상황들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골에 있는 시간들이 점점 행복하지 않았고, 난 서울에 오는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살았다. 난 그때 주변에 일어나는 일 때문에 힘들었고, 친구는 연애 때문에 힘들어했다. 동기는 다르지만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기에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 감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를 해 주었다. 그리고 항상 거기엔 ‘술’이 함께 했다. 술을 마시지도 못했던 그녀는 남자를 알아가면서 더불어 술도 알아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평생 마실 술을 몰아서 다 마신 느낌이다. 급격하게 불어난 체중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매주 술을 마시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친구는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주말 파티는 종지부를 찍었다. 친구가 나가고 나서 한동안 집은 비어 있었다. 주말에 내가 올라오긴 했지만 예전 같은 즐거움은 느끼지 못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확실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때 꾸준히 연락하던 미국인 남사친이 있었다. 그 친구가 이사를 해야 하는데 잠깐 있어야 할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선뜻 나는 집을 내주었다. 내 공간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민감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거 보면 또 그렇지도 않나 보다.


이 친구와는 해방촌에 있는 펍에서 알게 됐다. 당시 해방촌에서 유일하게 새벽까지 열던 ‘오렌지트리’라는 펍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다른 곳에서 놀다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을 때 그곳이 종착지가 되곤 했었다. 지금 그곳은 몇 번이나 간판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 바에선 작은 이벤트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스탠드업 코미디(stand up) 었는데, 어떤 사람이 작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웃긴 이야기나 짧은 농담을 하면서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서서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관객들은 그 말에 반응하며 웃는다. 우리에겐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외국 친구들에게는 익숙한 문화였다.


또 한 가지 펍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이벤트가 있다. 바로 트리비아(trivia)인데, 트리비아는 쓸모없는 지식이나 상식을 뜻하는 말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해진 요일에 펍마다 트리비아 나잇이 있다. 진행자가 있고, 생활 속의 지식이나 상식들을 문제로 만들어 온다. 그럼 각 테이블이 한 팀이 되어 그 문제를 맞히는 것이다. 당연히 우승자에게는 상이 있다.


이런 이벤트들로 인해 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친해질 수 있다. 외국 친구들은 레스토랑이나 펍에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런 문화를 보면서 느끼는 건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많이 만들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꼭 프로가 아니어도 펍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일, 펍에서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아하는 모든 것들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아주 가볍게 한다.


그와 처음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던 건 아니다. 그때 스탠드업 코미디 팀이 있었고, 다른 친구가 나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며 연락을 했었다. 그와는 친한 친구라고 했다. 나와 연락을 하던 친구는 꽤 먼 곳에 살았고, 이 친구는 경리단에 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이 친구와 해방촌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그 계기가 되어 대화를 하다가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모든 생활 정보를 앱을 통해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이태원의 생활 정보들을 담고, 사람들에 대해 소개하는 Groove라는 무료 잡지가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이 친구는 그 잡지에 그림을 연재하고 있었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대화가 참 잘 통했다. 무엇보다 집이 가까운 것이 큰 메리트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와 가까워졌고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연락을 하면서 친분이 쌓이고 그와는 아주 편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학교에서 제공되는 집과 지금 살고 있는 집 만기의 텀이 있어서 잠깐 동안 있을 집이 필요했다. 어차피 난 지방에서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 친구한테 잠깐 집을 내 준 것이다.


이렇게 또 여사친과 남사친과 주말에만 함께하는 동거를 해본다. 제목에서 동거란 말을 써 놨지만 동거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린 누군가와 계속 동거를 한다. 그중에서도 이성과 하는 동거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자라서 동거를 하느니 결혼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나를 알게 되고, 확고한 취향을 알게 되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 사람이 좋아서 결혼을 하지만 가족까지 떠안아야 하는 한국의 결혼 제도에 대해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동거를 하는 건 집을 따로 두고 살면서 연애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다가온다. 그 사람과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그 사람의 성향을 알게 되는 것이다. 화장실에서는 뒤처리가 깔끔한지, 설거지를 바로 하는 타입인지, 물건을 잘 정리하는지. 그냥 연애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세밀하게 볼 수 있다. 같이 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도 참 많다.


나의 마음의 공간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주고, 그 안에서 우린 소통을 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기꺼이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 관계가 지속될지, 어느 순간 끝이 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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