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해방촌
한 사람과의 연애가 끝날 무렵, 연애 기간을 묵상하며 다음 연애를 위해 발전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길고 긴 건강한 사색의 시간을 갖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옆에 누군가 없다는 공백 기간을 참을 수 없어 그 자리를 채워 줄 누군가를 찾기 시작한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가면 외로움보다는 괴로움이 수반되겠지만, 싱글의 삶은 이러한 외로움이 수반되는 삶의 공백 기간을 잘 견뎌내며 살아가야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늘 연애 중일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연애 중이어도 그 사람과 계속 함께 하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언제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면 극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늘 혼자였던 사람은 외로움이 덜하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삶의 루틴을 만들었기 놓았을 때문일 수도 있다. 바로 익숙함의 차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 삶에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은 달라진다. 누군가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는 %가 점점 늘어나면 또 그 환경에 익숙해진다. 누군가와 있을 때 시끌벅적해서 혼자만의 시간이 그립다가도 그 이후 혼자가 되면 느끼는 허전함은 배가 된다.
둘보단 혼자가 편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어색해져 버린 혼자만의 삶을 잘 가꿔 나가고 있는 싱글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바로 비슷한 처지의 동네 싱글 친구가 아닐까 한다. 각자의 삶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말이 통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소싯적에 테솔 (TESOL) 자격증을 따기 위해 주말마다 학원을 다녔을 때, 우리 반에 캐나다에서 온 친구가 함께 이 과정을 수강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유치원이나 개인 과외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티칭에 대해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케이티란 이름을 가진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이태원에 살고 있었고 그랬기에 우린 더 친해졌다.
어느 날, 케이티가 해방촌의 어느 한 카페에서 하는 모임에 날 초대했다. 그건 바로 ‘드링크 앤 드로우’라고 불리는 드로잉 모임이었다. 이름 그대로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임이었다. 난 정말 그림을 못 그린다. 그런데 케이티는 괜찮다고 했다. 참여 인원은 5명에서 10명 사이었다.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소개를 하고, 누군가가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뒤에 있는 사람이 그 그림에 덧붙여 나가는 것이다. 진짜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함께 협력하는 그림이니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이 모임에서 뭔가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케이티를 통해 해방촌의 한 펍에서 이루어진 Improve theatre (즉흥 연극)을 보러 갔다. 한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멤버들이 어떤 주제에 관해 연기를 시작한다. 처음 사람이 어떤 행동과 말을 시작하면 다음 사람이 그 사람을 터치하고 자기가 말을 하면서 다음 극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기였다. 이 두 모임을 참여하면서 정말 내가 모르는 건전한 모임들이 많았구나 생각했다.
즉흥 연극을 보고 난 후 뒤풀이 파티에서 난 로저라는 친구를 만났다. 로저는 나보다는 나이가 한참 많았지만, 위트가 넘치는 친구였다. 공연이라는 같은 공감대가 있어서 대화가 잘 통했고, 가까이 살고 있어서 친해졌다. 심심할 때마다 로저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창의적이고 재능이 많은 친구였기에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며 로저와 베스트 프랜드가 되었다. 이렇게 나이가 있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도 이 곳만이 가진 문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또 로저 덕분에 많은 건강한 모임을 알게 되었다. 영어로 스피치를 하는 모임도 있었고, 로저는 열심히 참여하고 있었다. 영어와 스피치를 향상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고 그 이후에 사람들끼리 친목까지 다질 수 있어 건강한 모임이다. 나도 몇 번 참석은 했지만, 낯가림이 있어 계속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다.
해방촌에 살면서 외국인 친구들 덕분에 많은 모임을 알게 되었고, 참여하게 되었다. 싱글의 삶을 더없이 즐길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내가 적극성을 띄고, 조금의 용기만 낸다면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모임에 참여를 하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긴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낯을 가리고 어색해한다는 것을.
다수보단 소수의 만남이 좋고,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나의 기분을 알아채는 그런 오래된 친구들하고 있는 게 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도 아직 그렇게 공감과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괜찮은 가 보다. 싱글로 살고 싶어 계속 싱글로 사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어떻게 환경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 만큼은 시간마다 전화를 해서 생사를 확인해 주는 친구가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같은 싱글은 이렇게 서로 생사 확인을 해 줘야 해. 만약 네가 3-4시간 정도 연락이 안 된다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너네 집으로 달려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