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즉시 나는 산부인과에서 대장항문외과로 전원되었다.
수술 전 내가 들었던 나의 병은 당초 자궁내막증 (그러나 대장까지 침범된) 이었으나
막상 열어보니 병변이 대장 부분이 훨씬 크고 심각했던 데다가,
떼어낸 조직이 자궁내막증 조직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크고 딱딱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병동을 옮기게 되었는데, 망설임 없이 '간호간병통합' 병동으로 신청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은 말그대로 간호사가 간병의 역할도 하는 병동으로 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는 병동이다.
일전에 가족의 병문안을 갔었을 때, 간접경험 해본바로는 훨씬 병동 내 분위기가 조용하고, 의료서비스도 더 전문적인 것을 인상깊게 느꼈기 때문에 만약 나도 병원에 오게된다면 주저말고 간호간병통합 병동으로 가야지,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이 나에게 이렇게 빨리 젊은 날에 올 줄 몰랐더랬지.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수술 후 나는 내 몸 컨디션에 따라 기분이 오락가락 했다.
어떤 마약성 진통제로도 고통이 멎지 않는 순간에는 그냥 여기가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상태가 좋아져 농담도 주고받고, 운동도 할 수 있는 날에는 나 제법 잘하는데, 스스로를 추켜세우며 곧 일상으로 돌아갈 날을 기대하곤 했다.
컨디션이 나쁜 날엔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서 몇시간씩 기절한듯 자다가 깨느라 하루가 가고,
컨디션이 좋은 날엔 하루가 길었다.
매일 걷는 병동의 복도는 똑같은 풍경에 지루했지만 그렇다고 열바퀴씩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을만큼 체력이 있지도 않아서 침대에 눕는 대신 앉아있곤 했다.
모처럼 아침에 기운이 나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침대에 걸터 앉아있는데
커텐이 잠시 젖혔다가 닫히고 이내 다시 젖히면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장루를 하셨어요?"
"...네"
"아, 죄송해요. 제가 지금 인계받은 조무사인데, 너무 젊으시고 장루도 안보여서 아닌줄 알고...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하고 웃어보였지만 그 대답은 내가 처음으로 소리내어 장루환자라고 인정한 일이었다.
아, 나는 장루환자가 되었구나.
하루아침에 일어난 변화지만 이 변화가 이끌어낸 앞으로 적어도 두달 혹은 세달의 나의 일상은 장루환자로서의 삶이다.
수술받은지 고작 3일 째.
아직은 몸에 오는 고통과 갑작스러운 변화에 감정이 요동치지만, 그 유명한 말처럼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드는 생각은,
돌아보면 지나온 '과정'인데, 그 지나고 있는 '과정' 속에서는 멈춰있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내가 갇힌것처럼 느끼는 이 순간들이 쌓이면 과정이 되고 그 과정이 한 챕터처럼 마무리 되었을 때,
나도 아 이 또한 지나갔구나, 느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쌓아갈 지금의 순간들은 어느날은 희망으로 가득찰 수도 있고, 또 어느날은 원망과 절망으로 얼룩진 날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느끼는 이 생생한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볼 참이다.
때로는 너무 날것의 감정에 불편한 감정이 들더라도, 이것또한 지금의 순간을 감내하고 있는 내가 내뱉는 덩어리일테니까.
나는 언제나 내가 괜찮은 사람이길 바랐지만
그리고 괜찮은 모습으로만 보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를 많이 다그쳤지만
지금은 여기에 처음 느껴보는 고통과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절망과 앞으로의 일상에 대한 막막함과 두려움을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