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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Aug 24. 2020

죽음을 명상합니다.

150713, 다시 태어나다.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싶을 만큼 기력이 소진됐을 때,

정수리를 짓찧는 고약한 두통이 휘몰아칠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근자근 밟히는 통증에 신음소리가 비집고 나올 때,

착한 남편을 향해 짜증 한 바가지를 들이붓고 싶어 질 때,

아이의 종알거림이 귓바퀴를 맴돌다 힘 없이 흩어져 가슴이 먹먹해질 때,


죽음을 명상한다.


*


2015년 7월 13일. 9시간의 황홀한 진통 후, 3.7kg의 아기를 건강하게 출산했다.

따끈하고, 묵직한 갓난아기가 가슴 위에 올려졌을 때, '인생의 참된 환희'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너구나! 반가워! 고생했어.


곧 대학병원으로 응급 후송됐다. 자궁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아래쪽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왈칵왈칵 쏟아질 때마다 손 끝, 발 끝이 느슨해졌다. 분만 직후의 환희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점점 으스스한 느낌에 에어컨을 줄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졸음이 쏟아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새벽부터 진통했기에 잠이 쏟아지는 줄 알았다.


돌아보니 그건 죽어가는 느낌이었다.


병원 도착 후, 곧장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네 시간 여 후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새벽이 고비입니다.
깨어나더라도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라는, 영화 속에서나 자주 듣던 대사를 들어야 했다.


원인 모를 이상 출혈이 있었고, 신체의 지혈시키는 기전이 고장 나있었다. 자궁이 끝도 없이 혈액을 쏟아냈다고 한다. 수혈을 위해 혈액을 나르던 여사님들은 평생토록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했다. 가여운 남편은 흡사 피바다와 같았던 수술실에 들어와 처참한 광경을 마주하고,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얼굴이 벌게진 채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후에 회상했다.


결국,

32년 간 자리를 지키고,

열 달간 아기의 집이 되어주었던 자궁과

영원한 이별을 했다.


*


수술 후 체온은 40도를 웃돌았고, 교대로 집중치료실을 찾아와 나를 살피는 간호사, 의사들의 눈빛엔 긴장감이 묻어있었다

얇은 호스가 양쪽 아랫배 안쪽에서부터 살을 뚫고 나와 곧장 '해모박'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주머니 두 개에 연결돼 있었다. 그 주머니 안으로 마치 수도꼭지를 꼭 잠그지 않은 것 마냥 피가 퐁퐁 퐁퐁 새고 있었다. 수술 후 대략 나흘 간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뱃속에서부터 주머니로 피가 새고, 몸 여기저기에 찌른 바늘구멍 어딘가로는 불특정 타인의 혈액이 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총 120팩의 수혈을 받았다고 했다.

총 120명의 생명력이 나의 소생을 위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산소호흡기에 기댄 채 침대에 묶여있던 팔다리 때문에, 그리고 몸 여기저기 꽂혀있는 링거 바늘과 갖가지 통증들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그 기간 동안, 자유의지로 할 수 있었던 두 가지는 ‘숨’을 의식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숨'을 의식할 때, 내가 분명히 살아있음을, 하지만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우며 꺼지기 쉬운 것인지를 통감할 수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기 직전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에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숨'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요가에서 말하는 ‘프라나야마(pranayama; prana는 생명력, yama는 조절, 통제라는 뜻) 수련’ 이 왜 호흡을 조절하는 수련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숨'이 곧 생명력이었다. 정성껏 숨을 쉬었다. 모든 숨을 의식하며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러면서 내내 '삶'에 대해 생각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뭘까?
기적같이 다시 얻은 이 두 번째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가치 있을까?


죽음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것은 죽음과 고통이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출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마치 완전히 다른 인격의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더 나은 인간’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자면, 나는 한층 느긋하고 가벼운 인간이 된 것 같아서 썩 마음에 든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경험으로 큰 진리를 번개 맞듯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습관이라는 녀석은 엄청난 근성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든 과거에 스스로 파놓았던 함정에 다시 빠뜨리곤 한다. 그 함정에 빠졌다가 다시 기어 나와 빛을 보며 걷고, 또 시커먼 진흙 구덩이에 빠지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앞으로의 글들은,

새 생명의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조우하고,

그것을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의식하며 헤쳐나가는

처절한 육아 및 갱생 스토리이자,

스스로를 향한 다짐의 기록 같은 것들이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았던,

죽음을 몰랐던 그 시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다짐 말이다.


삶이 바뀌는 유일한 순간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다.
그리하여 마침내
잠들어 있던 내 영혼이 천천히 눈을 뜰 때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웨인 다이어


2015. 07. 13 생의 마지막 한 컷이 될 뻔했던 사진. “아가야,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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