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싱거웠다
오전 잠투정을 한 판 마치고 넋이 나가 있을 때 엄마와 막내 이모가 방문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똥강아지 마냥 꼬리라도 흔들며 매달리고 싶었다.
들뜬 분위기에 아기가 금방 잠에서 깼다. 엄마가 능숙하게 아기를 봐주고, 나는 이모와 대화를 나누며 집안일을 후다닥 해치웠다.
명절날 큰고모가 말씀하셨다. 아이는 여러 사람이 키워야 한다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아무튼 엄마 혼자서는 아니라고.
하루 종일 아기에게 주절주절 하이톤으로 말을 건넨다.
지민이 배고파? 배고파요? 어구 이뻐라. 엄마가 금방 갈게. 쉬했어? 쉬했구나, 우리 아기.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 엉덩이도 이쁘고, 토실토실 다리도 이쁘네. 튼튼하네, 우리 아가. 까꿍! 엄마도 화장실 다녀올게. 금방 올게. 기다려. 응, 엄마 여기 있어.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어서 어디를 가느냐. 엄마 왔네, 까꿍! 기다렸어? 엄마 금방 왔지? 왜? 뭐가 불편해? 우리 산책 갈까? 산책? 좋아? 옷 입자. 따뜻하게 입고 나가자. 엄마랑 산책 갑시다. 아, 이뻐. 응차! 엄마랑 나갑시다. 졸려? 산책하다가 코 자. 어쩌고 저쩌고 나불나불.
내 주절거림에 아기가 웃어주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때때로, 합당한 응답을 받지 못한 내 언어는 허공으로 공허하게 흩뿌려진다. 그럴 때면 종종 외로움과 고립감에 사무친다.
아기는 엄마와 이모가 가기 전에도 한 번,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하게 울었다. 참으로 대단한 기백으로 울어댔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 곁엔 두 사람이나 있었다. 무력해지지 않고 다 함께 하하호호 웃을 수 있었다.
누군가 방문했다가 떠나면 집안이 한층 더 적막하게 느껴진다. 적막감은 위험하다.
얼른 아기띠로 안아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울다가도 밖에 나오면 울음을 그쳤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몇 걸음 걷지 않은 지점에서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쪽쪽이를 물려주니 마법처럼 울음을 그쳤다. 쪽쪽이를 발명한 사람 대대손손 복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걷고 걸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난여름, 출산 예정일이 며칠 지나고, ‘이제 우리 만나자-‘ 하며 하염없이 걸었던 날들이 떠올랐다. 어스름한 저녁 시간이었던 그때도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핑크빛과 황금빛, 보랏빛과 파란빛이 찬란하게 어우러진 환상적 무드가 나를 축복하고 있었다. 포근한 공기의 냄새, 산책 나온 사람들이 다정하게 나누는 이야기들, 그 평범함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기운, 귓바퀴를 부드럽게 스치는 선선한 바람.
이 모든 아름다운 감각들은 무탈한 출산을 예견하는 거라고 순수하게 믿었다.
순수의 시대는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아기가 깼다.
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축지법을 쓰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귓바퀴를 스치던 바람'은 이내 휙휙 세차게 지나갔고, 다정한 대화 소리따윈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기는 눈을 뜨자마자 빠르게 지나가는 배경을 멍하게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 중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기는 평온했다. 좀 싱거웠다.
아기는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 15분에 잠들었다.
남편이 보고 싶다.
151028 [1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