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잘하고 있다. 무조건 잘하고 있다.
아기가 졸릴 때 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졸려서 우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모르겠다.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최고조로 운다. 네시가 지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울음이 또 시작될 거야.’
그 울음은 나를 할퀴고, 때리고, 밀치고, 찌르고, 꼬집는다.
그 울음은 나를 원망하고, 책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 같다.
두 눈을 꽉 찡그려 감고 입을 크게 벌린 채 혀를 바르르 떨면서 운다.
얼굴이 벌게지고,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필사적으로 아기가 울 듯, 나 또한, 필사적으로 울음을 그치게 할 방도를 찾아보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울진 않겠지만 그 순간은 이미 영원으로 느껴진다. 아기의 울음은 엄마를 극도로 각성시키다 결국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우는 애가 진짜 내 애가 맞는지 의아해진다. 외계의 다른 존재 같다. 귀를 틀어막고 싶어 진다. 제발. 그만해.
두렵다.
내일 또 찾아올, 그 격앙된 울음이 두렵다.
아기가 뭔가를 불편해하는데 시원찮은 엄마가 무지하여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봐 두렵다.
너무 두렵다.
아기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게 가장 두렵다.
울음이 잦아든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바락바락 울어대던 아기는 분유 한 통을 모두 비우고 눈을 꼭 감은 채 새근새근 잠들었다.
아기가 잠들면 그때야 제정신이 ‘들어온다’.
'이제 다 끝난 거야?' 빼꼼 눈치 보며 들어온다.
그 어마어마한 울음의 소용돌이 안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뒤집히다가 마침내 사위가 고요해지면 그때서야 보인다.
누군가와 머리 끄덩이를 잡고 싸운 듯 헝클어진 머리칼,
조약돌 같은 아기의 손발에 사정없이 멱살 잡혔던 목덜미,
아기의 침과 콧물과 땀으로 흥건하게 점령당한 티셔츠,
나의 무능함을 비웃듯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줌기저귀와 똥기저귀들.
이런저런 시도가 있었음을 일깨워주는 바닥에 버려진 아기띠와 포대기, 초점 북과 딸랑이.
그제야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수술 부위와 달달달 떨리는 손.
그리고 내 얼굴.
완벽하게 패배한 내 얼굴.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힘들다고 소리지르고 싶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건 죄악인 것 같다.
아기를 미워하다니. 나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악마에 씐 듯 독하게 울어대던 아기 옆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조심스레 뉘었다.
아기는 별처럼, 꽃잎처럼 잠들어있었다.
내 아기.
‘만약 그날 그렇게 떠났다면,
우리 아긴 다른 사람 품에서 울었겠지.
힘듦을 힘듦으로 해석하지 말자.’
그러나 ‘힘듦’은 그저 ‘힘듦’이지, 해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실컷 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난 잘하고 있다. 무조건 잘하고 있다.
우리 아기도 잘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바뀐 환경에 적응 중이다.
다시 힘내자.
비록 내일 또 좌절할 지라도.
151027 [1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