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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Sep 21. 2022

비록 내일 또 좌절할 지라도

난 잘하고 있다. 무조건 잘하고 있다.


아기가 졸릴 때 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졸려서 우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최고조로 운다. 네시가 지나면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울음이 또 시작될 거야.’

그 울음은 나를 할퀴고, 때리고, 밀치고, 찌르고, 꼬집는다.
그 울음은 나를 원망하고, 책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 같다.

두 눈을 꽉 찡그려 감고 입을 크게 벌린 채 혀를 바르르 떨면서 운다. 

얼굴이 벌게지고,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필사적으로 아기가 울 듯, 나 또한, 필사적으로 울음을 그치게 할 방도를 찾아보지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울진 않겠지만 그 순간은 이미 영원으로 느껴진다. 아기의 울음은 엄마를 극도로 각성시키다 결국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우는 애가 진짜 내 애가 맞는지 의아해진다. 외계의 다른 존재 같다. 귀를 틀어막고 싶어 진다. 제발. 그만해.    

두렵다.
내일 또 찾아올, 그 격앙된 울음이 두렵다.
아기가 뭔가를 불편해하는데 시원찮은 엄마가 무지하여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걸까 봐 두렵다.
너무 두렵다.
아기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렵다.
그게 가장 두렵다.

울음이 잦아든 아기에게 분유를 먹였다. 그렇게 바락바락 울어대던 아기는 분유 한 통을 모두 비우고 눈을 꼭 감은 채 새근새근 잠들었다.

아기가 잠들면 그때야 제정신이 ‘들어온다’.
'이제 다 끝난 거야?' 하며, 빼꼼히 눈치 보며 들어온다.
그 어마어마한 울음의 소용돌이 안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뒤집히다가 마침내 사위가 고요해지면 그때서야 보인다.

누군가와 머리 끄덩이를 잡고 싸운 듯 헝클어진 머리칼,
조약돌 같은 아기의 손발에 사정없이 멱살 잡혔던 목덜미,
아기의 침과 콧물과 땀으로 흥건하게 점령당한 면 100% 티셔츠,
나의 무능함을 비웃듯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줌 기저귀와 똥기저귀들.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음을 일깨워주는 바닥에 버려진 아기띠와 포대기, 초점 북과 딸랑이.
그제야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수술 부위와 달달달 떨리는 손.
그리고 내 얼굴.
완벽하게 패배한 내 얼굴.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곧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물이 쏟아졌다.

너무 힘들다고 소리지르고 싶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건 죄악인 것 같다.  
아기를 미워하다니. 나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악마에 씐 듯 독하게 울어대던 아기 옆에 너덜너덜해진 몸을 조심스레 뉘었다.
아기는 별처럼, 꽃잎처럼 잠들어있었다.
내 아기.

‘만약 그날 그렇게 떠났다면,
우리 아긴 다른 사람 품에서 울었겠지.
힘듦을 힘듦으로 해석하지 말자.’
 
실컷 울고, 다시 기운을 차렸다.
난 잘하고 있다. 무조건 잘하고 있다.
우리 아기도 잘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바뀐 환경에 적응 중이다.
다시 힘내자.
비록 내일 또 좌절할 지라도.


151027 [1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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