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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Sep 16. 2022

나를 살린 건 아기였다.

삶이 마치 여행 같다.


감회가 새롭다.
지민이가 백일.
내가 다시 태어난 지도 백일 째다.
정말 엄마가 됐구나.

소주 일곱 병을 마시고 어질어질 울렁거리는 상태에서 고속버스 맨 뒷자리에 강제로 앉혀진 채, 불시에 솟구쳐 나오는 토를 필사적으로 틀어막는 지옥의 숙취 같았던 입덧과 방금 전 100미터 결승선을 통과한 듯 꼼짝 않고 누워서도 지속되는 숨 헐떡거림, 매일 아침 만나는 굿모닝 쌍코피, 상상초월의 두통과 현기증, 언제나 함께 했던 얄궂은 요통과 치골통까지 모두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분명, 그 안에서도 행복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고통이었다. 어쨌든 내 육신을 빌려 한 명의 인간이 이 세상에 탄생하는 거니까 그만한 고통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앞으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할 그 한 명의 인간이 내 뱃속에서 때론 물방울을 터뜨리듯, 혹은 부드럽게 유영하듯, 혹은 몸부림치듯 꿀렁거리던 경이의 감각은 언어로 다 표현하기 불가능하다.

드디어 그날, 실로 거대한 진통의 파도 속에서 아기와 교감하며 남편, 친정 엄마가 그 시간을 함께 견뎠다. 아홉 시간의 진통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은 곁에서 멈추지 않고 등을 쓸어줬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베개를 뒤집어서 시원한 면이 얼굴에 닿도록 해줬다. 몸을 배배 꼬다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덮으면 다시 뒤쪽으로 말끔하게 넘겨줬다. 엄마는 그런 순간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진통은 더 이상 고조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하는 매 단계를 가뿐하게 넘기며 내 온 존재를 뒤흔들어놨다.
대자연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인정사정없이 인간을 압도한다.
그럴 때마다 아기에게 집중했다.

'너도 애쓰고 있지? 엄마도 애쓰고 있어. 잘해볼게. 곧 만나자.'

아랫도리 전체가 뽑혀 나가는 듯한,
혹은 내장까지 와르르 쏟아지는 듯 격렬하고 통쾌한,
이루 말할 수 없이 통쾌한 최후의 진통 직후,
마침내 아기를 가슴에 안았던 순간의 황홀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이후 처참했던 입원의 날들 동안 나는 아기를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나를 살린 건 아기였다.
 
여름이 꿈 같이 흘러갔다. 5일 후 우리의 집으로 돌아간다. 드디어 우리 셋의 삶이 시작된다.
삶이 마치 여행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디로 당도할지,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는 배낭여행 같다.
(아주 아주 무겁고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그런 여행 말이다. 좋은 사람도 만나고, 깡패도 만나고, 부상도 입고, 숨막히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다가 느닷없이 사기도 당하는 그런…)

깔깔깔 많이 웃고, 사랑한다 말하며 살아야지.


151020 [100일]




졸리면 많이 보챈다. 혼자서 잠들기란 어려운 거구나.
눈을 감아 깜깜해지면 세상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일까? 그렇지만 뜨고 있자니 피곤하고.

어제는 새벽 1시 30분, 4시 30분에 깼다. 두 번째 깼을 때엔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많이 보챘다. 낑낑 대고 찡찡 댔다.
언제 다시 잠들지 모르는 퍼런 새벽에 아기를 안고 친정 집 거실을 구석구석 어슬렁 거리는 남편의 발소리를 들으며 다시 드르렁드르렁 잠에 빠져들었다.


151022 [102일] 




처음으로 중력을 거스르다! 혼자서 뒤집기 성공! 장하다 내 딸!
수 차례의 용쓰기와 실패를 거듭하다 이루어낸 쾌거다. 뒤집기 따위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감동을 선사할 줄이야.

아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랑스러움에 가슴이 부풀어오르다 펑 터져버릴 것만 같다.
커다란 빛덩이가 내 가슴 정가운데에서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
빗장뼈가 지글지글 진동한다.


151023 [1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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