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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Feb 04. 2022

상실과 희망 사이

다시, 희망하고 사랑하며 걸어가라.


어둑하고 적막한 산후조리원이다.

큰 창으로 볕이 잘 들어오는 산후조리원을 예약했었는데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응급상황을 대비해 출산했던 병원의 산후조리원으로 급히 변경했다.

정사각형 방엔 환자용 병원 침대와 보호자용 간이침대, 하얀 냉장고, 그리고 작은 TV 모니터가 있다. 산모의 정서를 배려한 '콘셉트'나 '인테리어'랄 것은 전혀 없는 곳이다. '실용성'과 '검소함'이 콘셉트인지도 모르겠다. 조그마한 창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지 아침부터 낮 시간 내내 해가 들어오지 않는다.


남편은 어젯밤 퇴근 후 새 옷을 챙기기 위해 집에서 자고,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들렀다. 식당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하다. 하지만 특유의 긍정성이 방 안의 공기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남편이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데려왔다. 거구의 남편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천천히 토닥였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눈을 떠보라며 속삭였다. 아기가 낑낑대자 조심스럽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젖병을 물렸다. 모든 움직임은 천천히, 정성스럽게 이루어졌다. 젖병 한 통을 완전히 비운 아기를 세워 안아서 천천히 등을 쓸어줬다. 박력 있는 트림 소리에 웃고, 다시 아기를 눕혀 손가락,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침대에 모로 누워 그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로 분리된 곳에서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게 현실적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기를 바라보던 남편이 다가와 손을 뻗어 내 이마에 댔다. 투박한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묘하게 안심이 됐다.

, 왈칵, 하고 봇물 터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이 없던 지난밤, 나는 비통함과 비참함에 휩싸여있었다.

전복된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소중하게 여겼던 신체의 일부를 잃고,

아기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상실감,

젖을 먹일 수 없는 엄마라는 죄책감 비슷한 것,

한 달 간의 병상 생활 동안 급격히 쇠약해진 몸.

이런 것들과 관련한 온갖 감정이 휘몰아쳐서

<쇼미더머니>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

에구, 어제 내가 올 걸 그랬구나.”

피곤해서 꺼메진 얼굴을 한 남편이 한참을 토닥여줬다.


사실은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걸 알고 있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자궁을 포함하여,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들을 애도하고,

변함없이 내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온몸의 감각으로 다시 느끼며 감사할 시간이 필요하다.


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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