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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Nov 26. 2022

꽃은 꽃, 돌은 돌, 죽음은 죽음

“인생이, 한바탕 꿈꾼 것 같네.”



만약, 내가 그날 그대로 떠났다면?

분만 진통 중 마사지 하나 제대로 못하냐며 신경질 냈던 것이 남편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면?

대학병원까지 쫓아온 친정 엄마가 “승미야, 힘내.”라고 응원해줬던 것이 차갑게 식어가던 딸에게 건넨 마지막 한마디였다면?

뜨끈하고 묵직하고 뭉클했던 갓 낳은 딸을 분만실에 누워 안아본 것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킨십이었다면?

'에이, 그럴 일은 없지. 네가 그렇게 될 리 없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나는 분명 그날 마지막 인사도 못 남기고 핏덩이 아기만 세상에 남겨둔 채 사망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죽음은 흔하디 흔하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이후 죽음이 너무 두려웠다.

아침저녁으로 왕성하게 피어나는 아기를 돌보며 나는 죽음의 그림자가 또 한 번 우리를 덮칠까 봐 시시때때로 몸서리쳤다. 수술 후 일정치 않은 간격으로 전신을 휘감아 오는 정체불명의 통증들은 “난 널 언제든 데려갈 수 있어!”라고 외치는 저승사자의 협박 같이 느껴졌다.

때로는 굴복하고 싶었다. 내내 고통에 신음하다가, 이렇게 맨날 앓고 있는 엄마 따윈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음 날 영영 깨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다 제정신이 돌아오면 나는 허겁지겁 아기를 품에 안았다.

죽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새살이 솟아나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통증은 불시에 엄습하며 두려움을 안겼다.


*


2021년 3월 30일 새벽,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69세였다.

어머님을 생각하면 무방비 상태로 환하게 웃는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작은 초승달 같은 눈을 꼭 감고, 볼록한 광대뼈를 한껏 추켜올려 입을 크게 벌린 채 하하하하 웃는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큰 오빠의 밥을 차려주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에서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는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하고 눈웃음이 매력적인 동갑내기 전라도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 후 아들 둘을 낳았다. 그 이후의 시집살이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입이 딱 벌어졌다. 나는 그때마다 투사가 되어 어머님 편에서 과거의 인물들과 싸웠다.

어머님은 늘 내편이었다. 예쁘다고, 잘했다고, 걱정 말라고 하실 때의 눈빛은 진지했다. 어머님의 칭찬을 들을 때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머님은 다리를 절고 계셨다. 가족들이 인공 관절 수술을 권했지만 그 수술을 받으면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고 하셨다. 거듭된 설득 끝에 내가 결혼했던 2014년도에 수술을 하셨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머님은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 배가 나오고, 늘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셨다. 가족들은 내과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늙으면 다 그렇다더라고, 또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고 하셨다.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 아버님과 함께 병원에 가셨고, 8kg짜리 거대 육종을 발견했다. 결국 7시간의 대수술 끝에 육종을 제거했다. 그 또한 내가 결혼했던 2014년도의 일이다.

그 육종이란 몹쓸 놈이 어머님과의 이별을 이다지도 앞당길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종양 같은 걸로 떠나는 사람이 우리 가족 중에는 없을 테니. 암, 그렇고 말고.

 한 해에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하신 어머님은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지만 차차 회복하셨다. 언제나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반겨주셨고, 여전히 하하하하 웃으셨다.


어머님은 정리 정돈을 잘하시는 편이 아니었다. 주방 서랍엔 비닐장갑, 딱풀, 가위, 영수증, 청테이프, 스카치테이프, 지퍼팩, 라이터, 소금통, 유통기한이 수년 지난 다시다, 라면 스프, 크기도 용도도 다양한 일회용 밴드 세트, 붕대, 볼펜 한 묶음, 병따개, 휴대용 라디오 등이 잔뜩 어지럽게 뒤엉켜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선 그 서랍 속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치듯 뒤적거려야만 했다. 무엇이든 결코 쉽게 버리시는 법이 없고, 값싼 생필품을 왕창 구매해서 쟁여놓으시던 어머님은 도마가 십여 개 정도였고,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바가지들은 플라스틱 바가지 컬렉션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아마 20대 시절부터 간직해오신 듯한 옷들은 방 한 칸을 완전히 잠식시키고 있었다.

어머님은 세탁기를 안 쓰셨다. 내가 90년대에 마지막으로 봤던 나무 빨래판으로 모든 옷을 손으로 직접 빨아 입으셨다.(화장실엔 빨래 비누가 수십여 개 쌓여 있었다.) 자식들이 세탁기를 사드린다고 해도 어머님은 극구 반대하셨다. 청소기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나는 어머님 무릎병의 8할은 손빨래와 손걸레질 때문일 거라며 어머님께 분통을 터뜨렸다.

아기가 옆에 있는데도 서슴지 않고 털털한(?) 언어를 쓰는 어머님께 짜증이 나기도 했다. 땀을 닦은 손수건으로 아기 입가의 침을 닦으려 하실 땐 경악했다. 그때마다 내 표정은 아마 차갑게 굳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님은 변함없었다.

아버님을 포함한 가족들의 성화에도 절대 바뀌지 않는 고집스러운 삶의 방식이 그러했고,

늘, 한결같이, 잘했다고, 걱정 말라고, 아기가 똘똘한 건 다 네 덕이라고 칭찬하는 성정이 그러했다. 그리고 하하하하 웃는 웃음소리.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머님 안의 육종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머님의 웃음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항암치료란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끝까지 완주한다면, 육종이란 놈이 박멸되기만 하면, 그 후부턴 천천히 회복하면 될 테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손톱, 발톱 끝이 까맣게 변했다. 머리카락이 모조리 다 빠져버렸고, 기력이 쇠하여 겨우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결국 어머님은 항암 치료를 받다가 명을 더 재촉할 것 같다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셨다.


기억이 선명한 2021년 1월 4일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형님과 어머님 댁에서 만났다. 함께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지난주에 했던 검진 결과를 들어본 후, 혹시 수술이 가능한지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아버님은 당일 심장 시술 예약이 잡혀있어 전날부터 입원 중이셨다.

지독하게 추운 날이었다.


우리는 시커먼 CT 촬영본을 들여다보는 의사 앞에서 순한 양이 되어 결과를 기다렸다.


“폐에도 전이가 됐네요. 신약까지 좋은 약들은 다 써봤는데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책상 끝에 놓인 호스피스 병동 팸플릿을 집어 건네며) 완화치료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마 지금 예약을 하셔야…”

“네에?”


어머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형님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의사는 당황한 것 같았다.

“환자분께서 전혀... 생각을 못하신 것 같네요?”

우리는 치료의 향방을 의논하러 온 것이지, 죽느냐 사느냐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수술하면 안 되나요?”

어머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형님은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나는 돌처럼 굳어버렸다.

의사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상태에선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눈이 많이 와서 땅이 미끄러운 날이었다. 우리는 셋이서 한 걸음, 한 걸음 의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했다.

6개월. 어머님께 남은 시간은 6개월이라고 했다.

6개월 후, 올여름이 시작될 즈음엔 어머님이 안 계신다고? 여기에, 이렇게 살아계신데?

우리 셋은 허기도 느끼지 못하고 해가 지도록 거실에 웅크려 앉아있었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길고 긴 침묵을 깨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인생이, 한바탕 꿈꾼 것 같네.  


어머님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5년, 5년은 더 살 줄 알았는데…
받아들여야지. 뭐 어쩌겠어.
그래도 남들 하는 건 다 해봤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결혼시키고, 손주도 보고.
그럼 됐지 뭐.
원 없다.


불 꺼진 거실의 어둠 속에서 어머님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와중에도 우리 셋은 한 편이 되어 다시 어머님의 시댁과 싸우고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 작고 초라했던 어머님은 수년 전부터 몇 번이고 똑같은 언어로 풀어놓았던 시집살이의 역사를 다시 쏟아내는 동안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어머니, 우리 속상했던 얘기 말고, 즐거웠던 얘기 하면 어때요? 아들 둘 키우시면서 재미났던 추억이라든가…”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우린 또 한 팀이 되어 눈앞에 없는 적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어머님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최대한 집에서 지내고 싶어 하셨던 어머님은 한 달 후,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셨고, 한 달 하고 보름 후, 돌아가셨다.

포근한 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데면데면했던 형님과 나는 꼭 붙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했다는 요즘 시대에 70세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님이 가여웠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수난의 연속이었던 시집살이를 뒤로 하고 이제는 귀여운 손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인생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음이 한탄스러웠다. 인생의 든든하고 소중한 내 편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게 슬펐다.

충분히 울고, 다 함께 어머님을 추억했다.


*


삶이 한바탕 꿈꾼 것 같더라는 어머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 또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기대어 간신히 숨을 쉬고 있을 때, 그렇게 생각했었다.


삶이 꼭 하룻밤 꿈같네.
꿈꾸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 준비도 안 됐는데 그 모든 꿈들을 뒤로하고
곧장 떠날 수도 있는 게 인생이구나.


그랬다.

삶은, 인생은, 본래 그런 것이었다.

죽음은 불행이고, 그 불행은 적어도 젊은 나를 덮치진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아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그 불행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 빨리 앗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믿고 있었지만 어머님은 의사가 예상한 6개월이라는 시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일찍 떠나셨다.


삶은, 인생은, 본래 그런 것이었다.

죽음을 ‘불행’이라고 해석하는 건 나의 해석일 뿐이고,

봄은 봄, 여름은 여름, 꽃은 꽃, 돌은 돌인 것처럼,

죽음은 죽음이었다.


모체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과 짝꿍을 이뤄 이생에 찾아오는 죽음.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라고.


어머님을 애도하면서 나는 죽음을 내 안에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직 찾아오지 않은- 죽음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종종 내 곁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면 문득, 절절히 실감한다.

우리는 언제든 서로의 손을 놓칠 수 있다고.

죽음은 늘 가까기에 있다고.

남들만 겪는 특별한 비극이라며 외면하고 싶을 뿐,

사실 그것은 투명한 모습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최대한 자주 죽음을 떠올린다.

우릴 둘러싼 모든 평범하고 안락한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무수한 기적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고, 매 순간 감탄한다.


아이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말해준다.


사랑해. 우주 끝까지 사랑해.
지민이는 소중하고, 지혜롭고, 반짝반짝 빛나.   


내가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는 날이 올지라도,

스스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아이의 가슴속에 한 마디, 한 마디 새겨 넣는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떠올리며 사는 건 너무 비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론 정반대다.

이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더 자주 감사하고, 더 빨리 용서하며, 그 보다 더 빨리 화해한다.

타인의 빛나는 부분을 재빨리 발견하고,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늦지 않게 이야기해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배울 점을 찾고 금세 회복 할 수 있는 능력은 죽음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다고 죽음에 의연해진 것은 아니다. 이별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것일 게다.

실컷 사랑하고, 실컷 슬퍼하며 살고 싶다.


시부모님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방문했을 때, 어머님은 새색시 같이 수줍은 표정으로 두 손을 아랫배에 공손히 모은 채, "안녕하세요오. 처음 뵙겠습니다아." 하며 반겨주셨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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