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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Jan 24. 2022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안온한 일상 중 느닷없는 불행이 덮쳤을 때 질문을 던진다.  

의식이 돌아온 직후부터, 퇴원 후 더딘 회복으로 고생하는 동안 묻고, 또 물었다. 과거의, 과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이렇게 까지 죽다 살아날만한 단초를 제공한 사건이나 증세가 있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의 우물을 끝없이 파내려 가다가 혹시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함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캐롤라인 미스의 책 <영혼의 해부>에는 이런 글이 있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은 모두 세포 조직이나 에너지장에 반드시 기억을 남긴다. (중략)
우리의 감정은 몸 안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면서 세포나 조직과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심신의학 권위자 크리스티안 노스럽 박사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는 이런 글이 있다.


자궁의 건강상태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내면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자궁의 건강은 여성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비판적일 때 위태로워질 수 있다.


두 번째 책은 퇴원 후, 내 자궁이 피를 철철 흘리며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불시에 덮쳐오는 정체불명 통증의 원인을 미치도록 파헤치고 싶어서 아이가 잠든 사이 밑줄을 박박 그으며 읽어댔었다. 

그밖에 같은 계통의 서적을 계속 읽었고, 그 과정에서 내 과거와 현재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그동안 모른 척하고 살았던 무의식들과 조우하고, 눈물 흘리고, 포옹하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를 좀 더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론대로라면 내 몸은 마음이 나아질수록 함께 건강해져야 옳았다. 그러나 몸은 지속적으로 통증에 몸부림쳤다. 한 달, 혹은 이 주일, 혹은 열 흘, 일정하지 않은 주기로 불현듯 일상을 덮쳐왔다.

그것이 일단 방문하면, 내 몸은 극도의 무기력으로 가라앉았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그저 가만히, 홀로, 조용히 누워있고만 싶었다. 하지만 오롯이 나에게 생존을 의존하는 어린 딸을 위해 몸을 일으켜야만 했다. 

정수리가 뻐근했다. 뻐근함은 곧 쇠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격렬한 통증으로 바뀌었다. 어지러움증과 더불어 두 눈알이 빠질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두통약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성인 다섯 명 정도가 나에게 들러붙어 주먹 쥔 손가락 관절로 내 전신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그것은 독감의 몸살 기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난생처음 느껴보는 고문 같은 통증이었다. 

아이가 나를 보건 말건 내 양미간은 찌푸려져 있었고, 신음소리가 절로 비집고 나왔다. 세 살 아기의 고집스러움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내 신경을 건드렸고, 때때로 격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실컷 그러고 나면 아이 앞에서 울며 사죄했다. 아이가 몇 번이고 나를 용서할 때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고, 죄의식을 느꼈다.


거실 창을 통해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어느 날 아침, 홀로 앉아 재미나게 놀고 있는 아이의 자그마한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런 엄마를 엄마로 두느니, 그때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직 아기니까 엄마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지금 죽어 없어지면 그리움도 없을 테니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건 결코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울의 수렁 속으로 끌려들어 간 나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대로 두다간 내가 나를 죽일 것이었다.


한 번 시작되면 며칠간 지속되는 통증에 격렬히 저항하다 어느 순간 항복하는 지점에 닿게 되면, 그때부턴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섬세하고 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통증의 감옥에 갇혀서 외부 세계를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말 그랬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질감, 온도,
그것이 내 아이의 볼에 가 닿았을 때
투명한 피부 아래로 보이는 얇은 혈관과
그 안에 흐르는 생명력.
아이의 숨.
숨의 냄새, 숨의 감촉, 숨의 온도, 숨의 세기, 숨의 속도,
생명이 들고나는 리듬의 아름다운 흐름.
그것이 내 볼에 닿아 간질이는 감각.
통증에 발발 떠는 몸을 일으켜
내 아이를 위한 음식을 준비할 때,
맑은 생명력이 응집된 신선한 채소의 빛깔,
그것을 칼로 썰 때에 느껴지는 진동, 소리,
나를 향해 두 팔 벌리는 아이의
놀랍도록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동자,
두 손으로 아기의 겨드랑이 아랫부분을 살포시 잡아 들어 올릴 때 느껴지는
야들야들 여리고 따뜻한 몸,
똥기저귀의 따뜻함, 그 귀여운 따뜻함,
아기와 함께 새로이 만끽하는 계절들,
산책할 때, 온 우주가 우리를 반겨주는 그 순간의 기적들,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서 분수처럼 철철 흘러넘쳐
내 전신을 휘감는 감각.


몸은 지극히 고통스러웠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숨 쉬고 있잖아.
아기가 내 앞에 있잖아.
만질 수도 있고, 눈 마주칠 수도 있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도 있잖아.
자라는 걸 볼 수 있잖아.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살아있는 한 늘 희망은 있어.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짱해졌다. 그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알 수 있었다. 통증 감옥에서 출소한 날 아침엔 마치 그간 무엇엔가 홀렸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개운하고 가슴은 생의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다시 한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올랐고, 그러려면 이 모든 증상의 내부적인 원인을 꼭 알아내야만 할 것 같았다.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바로잡아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에선 원인을 몰랐다.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다. 실체가 없는 무언가와 쉐도우 복싱하듯 싸우는 기분이었다. 출구가 없는 것 같은 미로 속을 끝없이 헤매는 것 같았다.

예고 없이 급변하는 컨디션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도 어려웠다. 당일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잦아지면서 직업을 가지려는 의지를 내려놓았다.

아직 삼십 대인데, 이렇게 집에서 앓기만 하다가 인생이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고 허전해졌다. 시시때때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


2021년 조 바이든이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각 종 포털사이트 및 SNS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관련한 기사와 일화들이 넘쳐났다.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무작위로 넘겨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만화가 있었다.



왜 하필 나입니까?

왜 넌 안 되지?



이 만화는 미국의 작가 딕 브라운의 <공포의 헤이 가르>라는 작품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9세 때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고 신을 원망하며 슬픔에 빠져있자, 그의 아버지 ‘조셉 바이든 시니어(1915-2002)’가 그에게 건넸고, 그는 이것을 액자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고 쓰여있었다.

그는 이 만화를 통해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 만화는 필요할 때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인 나는 선뜻 이해가 안 갔다. ‘왜 넌 안 되냐니, 신이 못됐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을 나에게 돌리자, 곧 믿을 수 없이 깊은 휴식과 안도감이 느껴졌다.

신의 마지막 질문은 수년에 걸쳐 과거와 무의식을 치열하게 파헤치며 내 몸이 아픈 내부적 원인에 대해 골몰하던 일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게 해 줬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진 줄 끝에 모든 비밀이 있을 거라며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고 있었는데, 신이 던진 질문은 무적의 도끼가 되어 잡고 있던 줄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그 원인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체가 무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이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건들, 행과 불행의 의미를 매 순간이 기적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작디작은 인간이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헤아린들 뭘 어찌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난 임사체험 후 생의 진리를 깨닫고 기적적으로 병이 완치됐다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가지고 앞으로의 삶을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


그 후로 더 이상 자궁출혈과 통증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기적적으로 다시 얻은 이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꺼이 끌어안았다.

‘신의 뜻’, ‘하늘의 뜻’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당면한 하루, 하루의 시간들 속에서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돌보고, 일상의 사소함에 감탄하는 것.

종종 손님처럼 찾아오는 원치 않는 일들, 그로 인한 고난 속에서도 보물찾기 하듯 뭔가를 배우고, 다시 고개를 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뿐이었다.


그 후로 통증은 인생의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안 친한 동반자.

불편한 동반자.

어쨌든 함께 가는 동반자.

생의 기적과 감사를 일깨우고 환기시키는 엄격한 선생 같은 동반자.


아,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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