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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Oct 13. 2022

선택, 그 이후

고통 안에서 배우고, 희망하라.



병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중환자실보단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여긴 어디고, 난 누구야. 여기에 있어? 내가?

수술한 아랫배에 철근이라도 박혀 있는 듯, 상체를 조금이라도 일으키려 하면 악 소리도 집어삼키는 끔찍한 통증이 급습했다. 어찌어찌 상체를 일으켰어도 자연분만 후 봉합했던 회음부가 모래에 쓸리는 것처럼 쓰라려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숨을 몰아쉬었다. 앉았다가 다시 누웠을 뿐이었다.

일반병동으로 돌아와 첫 식사를 하는 날, 앉은 상태에서 양팔로 침대를 짚어 회음부로 쏠리는 무게감을 최대한 덜고 있으면, 엄마가 숟가락으로 미음을 떠서 입에 넣어줬다. 그 미음 맛을 기억한다. 물도, 쌀가루도 참 달았다. 엄마는 신이 나서 입에 넣어줬다. 템포가 좀 빠르다 싶었지만 오랜만의 식사에 나도 신이 나서 참새 새끼처럼 받아먹었다.

식사 후 엄마와 복도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속이 메스껍더니 대비할 새도 없이 워어어억 토악질을 해 댔다. 하얀색 복도 바닥에 짙은 녹색 토사물이 퍼져나갔다. 먹은 건 미음 밖에 없는데 왜 초록색이지? 멍하게 녹색의 퍼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화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그 초록이를 몇번 더 뿜어내는 동안 복부에 힘이 들어가서 꿰맨 부위가 찢어질 것 같았다. 시야에 들어온 하얀 복도가 점점 더 하얘졌다.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토는 왜 녹색이었을까?

길쭉한 키와 까만 피부, 눈이 움푹 파이고 깡말라서 타버린 장작을 연상케 하는 주치의가 안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먹어야 해요. 처음엔 거의 입술만 축이는 정도로. 혈액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서 장기 전체가 작동을 멈췄었어요. 지금 미음을 먹는 것도 사실은 무리예요. 원래는 안 주려고 했는데... 먹고 싶어 하기도 하고… 조금씩 먹는 연습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준 건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먹어요.”

내가 물었다.

“근데 왜 토는 녹색이었을까요?”

“녹색?”

“네. 미음만 먹었는데.”

“글쎄, 모르겠는데.”

그리곤 미끄러지듯, 발이 땅에 붙어있지 않은 것 같은 걸음으로 스윽스윽 방에서 나갔다.

"엄마가 너무 급하게 줬지 뭐야. 천천히 줄 걸. 엄마 때문에......"

엄마가 자책 했다.

_


내가 아기를 낳았던 병원은 규모가 작고, 오래된 곳이다. 처음부터 대형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다. 가족적이고, 편안한 분위기의 병원을 찾고 싶었다. 그 병원에서 셋째, 넷째까지 낳은 산모들이 많다는 점에 더욱 신뢰가 갔다. 웃는 인상의 음성 좋은 할아버지 원장이 첫 진료부터 분만까지의 과정을 함께 했다. 

임신 중 극심한 두통과 잦은 코피, 잇몸 출혈, 철분 부족 등으로 순조롭지 않았던 기간에도 의사는,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좋은 생각만 하세요. 좋은 생각만.”


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괜찮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임신 안 해봐서 몰라요.’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말해줘서 좋았다. 요즘엔 두려움과 불안감을 미끼로 유혹하는 선전이 너무도 많다.

분만 후 이상 출혈이 감지되자, 경험 많고 노련한 의사는 나를 신속히 대학병원으로 옮기도록 조치했다. 한창 메르스가 유행하던 때라 바로 들여보내 주질 않았다. 일분일초가 급했다. 동행했던 수간호사는 다시 할아버지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 한 번에 나는 곧장 수술실로 직행할 수 있었다. 그 후론 일사천리였다. 일사천리라고 하기엔 어마어마한 양의 수혈과 자궁적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하튼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이다.

수술 직 후, 까만 장작개비 주치의는 나의 부모님과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산부인과 의사를 안 하려고 해요!
멀쩡했던 사람이 애 낳러 들어갔다가
죽어서 나오는 게 산부인과라니까!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유사 이래 출산은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는 진실을.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새 생명과 자신의 목숨을 맞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아기를 갖지 않았을까?


임신했을 때 13kg가량 토실토실하게 쪘던 살이 단 5일 만에 다 빠져버렸다. 팔뚝과 허벅지 살이 노인의 피부처럼 늘어지고 서걱거렸다.

복수가 차서 불룩한 배의 수술 부위엔 피와 소독약이 엉겨 붙은 채 굳어 있었다. 봉합 중에도 피가 줄줄줄 새어 나와 예쁘게 꿰매지 못했다고 했다. 통증이 없다가도 그 배를 보면 칼로 베이는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던 건 온몸의 멍이었다. 일반 병동으로 내려와 처음으로 화장실 거울에 몰골을 비춰 보다가 옷을 들춰봤는데, 옆구리부터 등 전체, 그리고 골반과 허벅지 전체에 거대 블랙홀 같은 시커먼 멍이 들어있었다. 혹시 대학병원으로 실려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걸까? 그 정도의 충격이 아니고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정도의 거대한 멍이었다. 회진을 돌던 장작개비 의사에게 물어봤다. 

“그때 몸이 정상이 아니라 여기저기 바늘로 찌르고, 지혈은 하나도 안되고...... 워낙 험하게 수술을 받아서 아마…”

그리곤 그로테스크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본인은 정상적으로 수술을 받은 게 아니에요. 기억이 안 나는 게 다행이지." 

다시 스윽스윽 퇴장.

나는 덜덜덜 떨며 침대에 누웠고, 엄마는 몸서리를 쳤다.


침대 위에 얹어져 있는 누더기 같은 몸이 지난날의 잘못된 선택들로 인한 결과물 같았다.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망쳐버린 정물화 같았다. 


만약, 신식 기기로 무장한 다른 병원에 다녔다면, 내 자궁이 피를 펑펑 쏟아낼 만한 미세한 징후라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지금 이 신세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만약, 자연분만 중 일어날 사고가 무서워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결심했다는 사람처럼 나도 그랬다면 괜찮았을까?

만약, 이 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으로 실려갔다면, 장작개비 주치의가 아닌 다른 주치의를 만났더라면 자궁을 살릴 수도 있었을까?

만약, 엄마가 나한테 미음을 조금씩 천천히 먹였더라면 정말 토하지 않았을까?

만약, 남편과 나의 궁합이 별로라고 했던 역술인의 말에 따라 결혼을 관뒀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만약, 살면서 맞닥뜨렸던 그 모든 결정의 순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랬다면, 그 순간순간들이 모여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병원이 아닐 수도 있었을까?


유튜브의 각종 자기 계발 콘텐츠에서 부르짖는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당신이 노력해도 안 되는 이유는 이겁니다!”


‘결과’라는 단어는 이미 과거를 품고 있다. 과거는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그 데이터들을 토대로 단죄하고, “넌 그게 문제야!”라고 질책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사안을 가지고 면박을 주는 건 비겁한 짓이다.


삶은 여정이고, 과정이기에 특정 시점을 근거로 한 사람을 판단해 봤자, 그 또한 지나간 과거다.

물론 한 인간이 성숙해지는 데는 ‘성찰’이 필수이므로, 과거의 행적을 깊이 있게 되짚어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신 질책 말고, 가르침으로. 스스로를 향한 가르침으로. 

(남한테 가르침을 주겠다고 달려들면 역효과가 난다는 걸 늘 가슴에 새겨야 한다.)

그다음엔 희망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내 꼴이 망쳐버린 정물화라면 스스로 붓칠을 더해 고난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리!


*


조금은 노후된 작은 산부인과였지만, 의료진이 나에게 보내준 친절함과 다정함은 아직도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할아버지 원장은 매달 의례적으로 점검하는 초음파 속 아기의 성장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고, 위기의 순간에 누구보다 신속하고 명민한 판단력으로 나를 살리기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처음부터 제왕절개는 내 선택지에 없었다. 무통분만도 선택지에 없었다. 아기를 만나는 처절한 산통의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지금도 가끔 그 산통이 그립다. “내가 애도 낳았는데 뭔들 못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퇴원 후, 내 출산 스토리를 들은 누군가 말했다.

“요즘 의사들은 그렇게 쉽게 수술을 해버린다니까. 자궁 적출까진 안 해도 됐을 텐데. 다른 병원을 가지 그랬어. 너무 아쉽다.”

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 따윈 없었다. 그리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던 엄마와 수술실 안까지 들어갔던 남편은 한결같이 말했다. 널 살리기 위해 수십 명의 의료진이 사력을 다하는 걸 목격했다고.

내 자궁을 적출하기 직전 수술 동의를 얻기 위해 부른 남편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무슨 수를 써도 안 돼요. 당장 적출하는 게 최선이에요.”라고 말한 장작개비 의사의 눈빛엔 참담함이 서려있었다고. 그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천상의 달콤함을 선사한 미음은 그 이후 눈앞의 음식을 대하는 자세를 바뀌게 해 줬다. 나는 종종 하얗고, 뽀얗고, 김이 모락모락 나던 미음을 마주했던 그때의 감동을 떠올리며 명상하듯 식사를 한다.


퇴원 후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다 흔하디 흔한 성격차이로 남편이 꼴 보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역술인의 궁합 풀이가 생각났지만- 우리는 위기의 순간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그날을 떠올린다.

우리가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진실 하나를 등대로 삼아, 오늘이 그(그녀)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므로 너무 늦기 전에, 다시, 또다시, 몇 번이고, 손을 잡고 나아가 본다. 자신의 부족함을 뼈 아프게 인정하고, 상대의 허물을 뜨겁게 안아준다. 이건 죽음이 알려준, 모든 관계에 통용되는 특급 비법이다.


사는 동안 내가 내린 모든 선택과 결정이 모여 그날을 만들어낸 거라면 나를 아주 칭찬해주고 싶다. 그 덕분에 죽음과 고통의 늪 속이 아니고선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지혜를 길어 올렸으니.

남과 나를 탓하지 않고, 배우며 희망할 수 있는 자세를 갖도록 도왔으니. 나, 칭찬해.


무엇을 경험하든, 빛과 그림자의 측면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고개를 빛으로 향하여 그 따스함을 만끽하고 곁에 있는 이와 함께 감탄할지, 혹은 그 반대로 돌려 어둠 속에서 홀로 구시렁 대고 비관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다. 모든 것이 선택이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임신 38주 2일. 앞으로 닥쳐올 미래는 아무것도 모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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