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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Dec 30. 2022

"쉬우면 이상한 거 아니야?"

인류 반복의 역사

지민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감당할 수 없었다.

어딘가 꼬집힌 듯 날카롭고 격렬하게 끝도 없이 우는 아기는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졌다. 잠깐 울음이 잦아들었을 때 아이를 슬픈 표정으로 바라봤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겠니. 모르겠어. 2초 정도 나와 눈을 마주치던 아기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울고 있는 아기에게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철저히 무능력했다.

지민이는 악악 울고, 나는 엉엉 울었다.


몇 년 전 <친정엄마>라는 연극을 할 때, 아빠가 된 지 얼마 안 된 선배 한 명이 눈에 띄게 수척한 얼굴로 연습실에 나타났다. 친정엄마 역할의 원로 배우 한 분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얼굴이 왜 그리 안 좋아?"

"어휴..... 이 셰끼 새벽 내 왜 그렇게 우는지. 와.. 진짜....."


끝도 없이 울어대는 갓난아기를 말하는 거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엄마 배우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한 마디씩 던졌다.


"그럼 애 키우는 게 쉬운 줄 알았어?"

"자네도 그렇게 컸어."

"아빠 되기가 쉬운 줄 알아?"


*


간신히 낮잠을 재우고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지민이가 너무 심하게 울었어. 왜 우는지도 모르겠어. 너무 힘들어.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왜 얘기 안 해준 거야. 내일이 오는 것도 무서워."


친정엄마의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지만,

까칠한 선배언니의 냉철한 한 마디가 돌아왔다.


그럼, 사람 하나 키우는 게 당연히 힘들지.
쉬우면 이상한 거 아니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한 명의 인간을 낳아 키우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반복된 역사이기에 당연하며 평범한 과정이라고 여겼던 ‘육아’라는 것을 만만하게 봤던 것이다.

아! 정녕 동서고금 이 세상 엄마들은 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길렀단 말인가?

충격이다.


말도 안 되는 극심한 수면 부족, 밤낮으로 무지막지하게 울어대는 아기를 얼르고, 달래 보지만 어찌해도 잦아들지 않는 울음에 좌절하고 넋을 잃다, 급기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시간들.

씻는 것은 고사하고, 생존을 위한 끼니를 겨우 겨우 때우고, 배변할 타이밍을 찾고, 간신히 재운 아기가 경박한 내 오줌소리에 깰까봐 노심초사하며 변기물 내리는 것마저 자유롭지 않은 일상.

그리고, 지독한 고립감과 악령처럼 자리 잡은 우울감.


이런 것들을, 현재 저기 저 멀리에 사는 우간다 엄마나, 아일랜드 엄마, 라오스 엄마들도 똑같이 겪고 있단 말인가?


몇 번이나, 더는 못 하겠어, 하곤 줄행랑치고 싶어진다.

베란다 창문을 열어 민원이 들어올 때까지 악을 쓰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창문 밖으로 애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한 번, 있었다)

아이를 재운 뒤에야 퇴근한, 피곤이 역력한 얼굴의 무고한 남편에게 욕을 퍼붓고 싶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아마도 우간다와 아일랜드와 라오스의 엄마들도)

온전히 나에게 의지한 채 곤히 잠든 아기의 눌린 얼굴이나,

특유의 살 냄새, 그리고 한 번의, 단 한 번의 방긋 웃는 미소에

즉각 궁극의 환희를 느낀다.

거짓말처럼,

좀 전의 혼돈을 깨끗이 망각한다.

다시 굳건히 엄마의 자리에 앉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역사는 이토록 처절하게 반복돼 온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온 세상 엄마들에게 연대의식이 느껴지며 힘이 솟아올랐다.

거기, 힘내요! 나도 힘낼게.

바닥에 나뒹구는 기저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의연해지고, 대담해지자.

이 시기는 흘러갈 것이고,

언젠간 반드시 그리워질 테니.


151029 [109일]

바로 이런 웃음이 육아를 지속 가능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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