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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Sep 27. 2022

전통육아 비법, 포대기의 기적

지나고 나니 그립더라고.


친정집에서 엄마와 함께 아기를 보는 중이었다.

 

“너 아기 때, ‘V’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어. 외계 파충류들이 나오는 좀 잔인한 드라마였는데 엄청 인기 있었거든. 모르지?

한 번은 네가 하도 잠을 안 자서 포대기로 업고 아파트 복도로 나갔어. 노란색 포대기 기억나니?

근데 우리 집 현관문 옆 벽에, 누가 써놨는지, 빨간색 크레파스로 ‘V’라고 써져 있는 거야.

그때 글쎄, 아기였던 네가 그걸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브,, 브으,,, 비,,, 븨.”

라고 말하는 거 있지!

난 네가 천잰 줄 알았잖아.”


아쉽게도 천재는 아니지만, 엄마가 그 일화를 들려주자마자 노란색 포대기 안에 폭 업힌 채, 서늘한 복도를 서성이는 엄마의 흥얼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한 촉감의 보풀이 잔뜩 일어난 샛노란색 포대기.

짐짓 가슴이 뭉클해졌다. 

두 다리로 달음질쳐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와 엄마의 등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대기는,

아직 낯설기만 한 바깥세상에서

단단하고 안전하게 감싸주는 보호막이었다.

할머니의 등은,

엄마의 등은,

완전하게 평안한 우주였다.




2015년 10월 30일 금요일. 생후 110일째 낮 시간.

분유를 먹고 잠투정이 시작됐다. 아기를 안고 자장가 메들리를 네댓 번 부르는 동안에도 아기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도무지 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재우지 않아도 될까 싶어 내려놓으면 곧장 얼굴을 찡그리며 대성통곡 할 시동을 걸었다. 신속히 다시 안아 등을 토닥이며 빙빙 돌았다. 점점 현기증이 나고, 팔이 달달 떨려왔다. 허리 통증이 히죽거리며 찾아오고, 발바닥부터 종아리까지 뻐근하게 항의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나섰다.


“안 되겠어. 업어.”

“(미심쩍어) 업어도 되나?”

“고개 가누니까 업어도 돼. 업어야 편한 거야.”

“뭘로 업어?

“아무거라도 어때.”


엄마는 장롱 속 깊은 곳에서 호피무늬 숄을 꺼냈다. 아마도 2000년 대 초반 가을 핫 아이템이었을 그것은 2~3년 전 조카가 아기일 때도 활약했던 것으로, 넉넉한 크기와 적절한 두께감을 가지고 있어서 아기를 업는데 무리가 없는 것이었다. 큰 숄을 한 번만 접어 넓게 펼치고, 가슴 앞쪽에서 묶기 좋게 만든 다음, 상체를 앞쪽으로 숙이고 엄마가 말했다.


“업혀 봐.”


조심스럽게, 아기의 가슴이 엄마의 등 위에 잘 안착하도록 올려놨다. 미심쩍은 내 마음만큼이나 아기의 표정도 몹시 미심쩍어 보였다. 대체 어떻게 하려는 심산인가 불안한 눈초리였다. 엄마는 대기 중이었던 숄로 아기의 뒷목까지 감싼 후 가슴 앞에서 매듭을 묶었다. 그리고 양팔을 뒤로 보내 두 손으로 아기의 엉덩이를 받쳤다. 어부바하는 할머니의 교과서적인 자세가 나왔다.


“됐다! 얼른 코 자!”


몇 분 지났을까?

엄마의 등 뒤가 조용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아기는 왼쪽 뺨을 할머니 등에 기대고 호피 무늬 포대기 안 쪽으로 턱이 기울어진 채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마법 같은 현상에 심히 흥분됐지만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는 일은 없어야 하므로 조용히 외쳤다.

 

“우와! 대박!”


엄마는 방에 들어가 바닥에 깔린 이불 옆에 조심스레 몸을 기울이다가 왼 손으로 가슴 쪽 매듭을 천천히 풀고, 오른손으론 아기가 급격히 낙하하지 않도록 받쳐 스르륵 내려놓았다. 이불로 옮겨간 아기가 끼잉 소리를 내자 엄마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지그시 잡아서 토닥였다.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으로, 자다가 놀라지 않도록 두툼하고 무게감 있는 베개를 가슴에 올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곧장 포대기를 주문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난 며칠 집에서 홀로 육아를 하는 동안 지속됐던 울음과 잠투정은 그야말로 나를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몰아붙였기에 그 어떤 돌파구가 간절했다.


*


한참을 노려봤다.

저걸 어떻게 한다? 아기와 단둘이 있는 집에서 내 등 위에 아기를 올려놔줄 사람은 없었다.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프로페셔널한 기운으로 아이를 옆구리 쪽으로 휙 돌려서 순식간에 안정적인 자세를 잡게 하고, 후루룩 포대기로 묶어 가뿐하게 집안일을 하는 할머니를.

우리 할머니였나? 동네 할머니였나? 50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큐 프로그램에서였나?


잠투정이 시작됐다. 대망의 포대기 어부바를 실연할 때가 온 것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기억 속 어부바 장인 할머니의 방식은 아직 무리였다. 어설프게 흉내 내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먼저 바닥 이부자리에 포대기를 깔았다. 그 위에 찡찡 거리는 아기를 눕혔다. 한창 뒤집기 기술을 연마하던 아기는 곧바로 뒤집어 엎드렸다. 아니야, 안돼. 업을 거란 말이야. 다시 아기를 똑바로 눕혔다. 뒤집지 못하도록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아기는 낑낑 거리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아기 쪽으로 등을 향한 채 꾸물꾸물 다가가서 바로 포대기를 잡아 일어설 작정이었는데, 버둥거리던 아기는 이미 자리를 이탈했다. 이탈하지 않았어도 애초에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한 번 더 시도해보려고 포대기에 다시 눕혔는데 그땐 이미 오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실패다. 다음 기회에.


여차저차 아기를 재운 후 휴대폰을 들었다. 선배 엄마들의 포대기 어부바 사례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 그곳엔 전국 방방곡곡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 엄마들은 어디선가 같은 전쟁을 치르고 있을 또 다른 엄마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주고자 자신의 땀과 눈물을 태워 얻은 귀한 비법들을 아낌없이 풀어놓고 있었다. 피보다 진한 자매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당장 그들의 집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그들을 꽉 끌어안아주고 싶었다.

 

수많은 블로그 중 한 엄마의 포스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동여매고, 잔뜩 늘어난 회색 반팔티에, 남편의 것인가 싶을 정도로 벙벙한 반바지를 입은 그녀는 화장기 하나 없고, 깡말랐지만 강인해 보였다.

육아를 하며 겪는 온갖 고초들을 -나처럼 징징대지 않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자의 거룩함과 권위가 느껴졌다.

그녀는 진지하게 포대기 어부바의 장점을 설파하고 있었다. 아기가 미끄러져 내려가지 않도록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포대기를 묶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안내와,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으로 성장시킨 큰 아이에게 부탁해서 -다각도로, 사각지대 없이- 찍은 동영상은 내가 걱정하고 궁금해했던 모든 부분에 대한 완벽한 답을 제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실전의 시간이 돌아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직 어부바 장인들의 방식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초보들이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파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아기가 졸려서 짜증을 내기 시작할 때 실패한다면 다시 내일을 기약해야 하므로 기분이 좋은 시간대에 연습해보기로 했다.


먼저 소파 등받이 쪽에 포대기가 반 정도 걸쳐지도록 좌우로 펼쳐 놓고, 그 위에 밝은 표정의 아기를 앉힌다. 어리둥절해진 아기의 눈을 보고 환한 웃음을 지어 안심시킨 후, 아기의 앞 쪽 소파 공간에 엄마도 앉는다. 아기와 밀착되도록 깊숙이 앉는다. 이때 아기의 앙증맞은 양다리를 벌려 엄마의 양쪽 엉덩이를 감싸는 모양새가 되도록 한다. 포대기 전체를 등 쪽으로 당겨 아기가 좀 더 밀착되도록 한 후 상체를 숙인 상태에서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고 일어선다. 아마도 여전히 어리둥절할 표정의 아기가 엄마의 등 한가운데에 안정적으로 엎드려있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면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손을 조심스럽게 떼고, 포대기의 양쪽 끈을 좌우로 펼쳐 길이를 체크한다. 왼쪽 끈이 좀 더 길어야 하므로 포대기를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약간 이동한다.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슬로건은

"탄탄하게! 안정적으로!"


오른쪽 포대기 끈을 왼쪽 겨드랑이에 꽉 끼워 헐거워지지 않도록 한다. 이때 가슴과 배가 눌린 아기가 켁켁 댈 수도 있지만 무시해도 좋다. 어부바가 완료된 후 엄마의 상체를 일으키면 곧 편안해지므로 마음이 약해져선 안된다.

길게 나온 왼쪽 끈을 오른쪽 어깨로 획 돌려서, 그대로 아기의 엉덩이를 받치며 지나, 엄마의 왼쪽 허리로 돌아오도록 한다. (양 끈을 모두 겨드랑이 밑으로 둘러서 묶는 방식보다 아기가 흘러내리는 걸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왼쪽 겨드랑이에 끼워뒀던 끈을 앞 쪽으로 뺀 후, 포대기의 앞섶을 잘 정돈하여 결코 헐겁지 않도록 꽉, 단단히 묶는다.


엇!

얼떨결에 성공이다! 나도 해낸 것이다!

감격에 젖어서 그 상태로 집안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아기의 표정도 편안했다. 거울을 보며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자 아기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 어부바의 신화가 시작됐다.


일주일 정도 같은 방식으로 업었다. 아기의 몸과 포대기를 다루는 감각이 발달하고, 아기도 졸음이 올 때 즈음 등짝을 들이미는 엄마에게 적응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어부바 장인들처럼 업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샘솟았다. (업기 위해 언제나 적당한 높이와 넓이를 가진 의자를 찾아다닐 순 없었다.)

몇 번이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아기와 크기가 가장 흡사한 인형으로 예행연습을 했다.


역시 아기가 기분 좋은 시간대를 잡았다.

아기를 마주 보고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이제부터 엄마가 널 새로운 방식으로 업을 거야. 우리 모두에게 좋은 거야.
오늘은 처음이라 불편할 수도 있지만 잠시 견뎌줘.

아기는 침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먼저, 아기를 놓치는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거실 매트 위에 요가 매트를 더 깔고 두툼한 요와 이불을 또 깔았다. 아기가 떨어지면 놀라서 울 순 있겠지만 다치진 않을 것 같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그 위에 올라섰다. 처음 어부바를 시도했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예행연습도 충분했다.

나를 믿고 아기를 믿자.


필요한 순간에 바로 포대기를 집어 후루룩 두를 수 있도록 끈이 엉키지 않게 세팅을 해뒀다.

후우, 심호흡하고,

마주 보고 안은 아기의 상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머리가 엄마의 겨드랑이 사이를 통과하도록 한다.

이때 엄마는 자연스럽게 상체를 숙이고 하체도 구부려 안정적인 자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의 머리가 엄마의 등을 보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에서,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와 용기를 가지고, 엄마의 오른 팔로 아기의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엉덩이까지 가로질러 단단히 붙잡아 등 쪽으로 이동시킨다.

이와 동시에 왼팔이 얼른 뒤로 돌아가 오른팔이 하는 역할을 도와준다.

“풀썩”

등을 한 번 튕겨서 아기를 엄마의 등 정가운데로 보낸다.

이때도 역시 아기가 “끽낏케켁킁” 하는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심려치 않는다. 아기도 엄마의 새로운 시도에 합을 맞추느라 나름 애쓰는 과정이라 믿어본다.

아기가 엄마의 등 위에 안정적으로 안착해있다는 감각이 느껴지면 한 손으론 아기 엉덩이를, 한 손으론 포대기를 들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포대기를 두른다.

(여기서 나만의 Tip! 재우기 위해 포대기를 하는 거라면 아기의 양팔은 가급적 포대기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차렷 자세인 상태에서 포대기를 두르도록 한다. 양팔을 휘저으면 잠에 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해냈다!

드디어 나도 대한민국 역사 속 ‘포대기 어부바 장인’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 이후 내 육아는 날개를 달았다.


아기를 업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두 팔로 청소기를 돌리고,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널었다. 아기는 필요에 따라 몸을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기울여 엄마의 일과를 진지하게 관찰했다.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보고, 내가 듣는 것을 함께 들었다. 하고 있는 일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며 언제든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손에 닿는 보드랍고 촉촉한 발을 수시로 조몰락거렸다.


등에 밀착된 아기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는 게 좋았다. 그것은 미숙한 엄마를 향한 위로이고, 무한한 평화이며, 들끓는 사랑의 감각이었다. 아기는 -완벽하게 안전했던 곳- 뱃속에 있을 때부터 줄곧 들었던 엄마의 심장 소리와 꼬르륵 소리를 다시 들었으리라. 잠이 오면 자장가를 부르는 엄마의 등에서 잔잔한 진동을 느꼈을 것이다. 아기가 깊이 잠들어도 내려놓기가 아쉬워 한동안 더 업고 있기도 했다. 팔다리가 달랑 거리는 아기띠와는 달리 전신을 감싸주는 포대기 안에서 아기는 늘 평온했다.

포대기 천은 양막이었고, 포대기 끈은 탯줄이었다.


그 후 어딜 가든 포대기는 필수였다. 아기띠는 서서히 구석으로 밀려나다 결국 붙박이장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포대기로 업고 산책하는 젊은 엄마를 신기해했다. 나는 포대기로 업지 않고도 육아를 할 수 있는 엄마들이 더 신기했다.

동네방네 엄마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포대기 하세요!

*


인터넷 속 포대기 엄마들의 수많은 블로그가 떠오른다. 하나 같이 눈물겨운 분투를 매일매일 해내고 있었다.

한 때는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주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입술을 빨갛게 칠해 젊음과 관능의 생기를 돋웠을 것이다. 맵시 있게 차려입고 약속 장소에 나가 전신을 빌딩 유리창에 비춰보았을 것이다.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천천히 홀짝이며 자신의 커리어에 관한 고민과 꿈을 앞에 앉은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이제 그녀들은 초췌한 얼굴과 기름진 머리, 목 늘어난 티셔츠와 펑퍼짐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눈앞의 작고 여린 생명에게 품과 시간을 전적으로 내어준다.

자신의 아이를 돌보며 배우고, 실수하고, 깨닫게 된 것들이 다른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잠든 틈에 컴퓨터를 켜고, 혹은 휴대폰으로 후다닥 기록과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행위를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싶었을 것이다.


가장  도움을 받았던 엄마의 블로그에 고맙다고당신 덕택에 내 육아는 한결 수월해졌노라고 댓글을 달았다.

내가  댓글에 다시 댓글이 달렸다.

도움이 돼서 기쁘다고. 한창 힘들 시기니 힘내시라고. 지나고 나니 그립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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