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달려 나가 내 앞섶을 풀어헤치리.
어제는 이모들이 날 구원해줬다. 외할머니댁으로 가서 함께 아기를 돌보고, 떡국과 튀긴 닭도 먹었다. 와구와구 정신없이 먹었다.
아기는 도착했을 때 낯설어서 한 번, 떠날 때쯤 배고파서 한 번 천지를 뒤흔들었다. 기운이 좋은 아이다.
잠투정 섞인 격렬한 보챔은, 이모 생각에, 보상심리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기는 태아 때부터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양수의 냄새, 감정 상태 등을 기억하고 내면화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열 달간 뱃속에서 평화로이 지내다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늘 듣고 느꼈던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가 갑자기 지워지고, 적막이 흐르는 어두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 손길에 맡겨져야 했던 아기는 무서웠을까? 화가 났었을까?
미안하다고, 고맙고, 기특하다고,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이야기해주리라.
많이 보채면, 더 많이 꼭 끌어안아주리라. 기꺼이.
오늘은 아침에 지민이와 함께 세 시간이나 더 잤다. 눈을 떠 보면 나의 아기가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이 새로운 생명체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아이가 내 자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당장에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심장이 필요하다면
당장 달려 나가 내 앞섶을 풀어헤치리.
인류는 높은 지능과 기술의 발달로 세대를 이어온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무모하고 억척스러우며, 감히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강도의 사랑을 품은 어미들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제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이며,
아이가 경험하는 모든 희로애락이
곧 나를 뿌리째 뒤흔들 것임을 또렷이 직감했다.
151031 [1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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