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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Dec 30. 2022

나를 뿌리째 뒤흔들 것임을

당장 달려 나가 내 앞섶을 풀어헤치리.


어제는 이모들이 날 구원해줬다. 외할머니댁으로 가서 함께 아기를 돌보고, 떡국과 튀긴 닭도 먹었다. 와구와구 정신없이 먹었다.

아기는 도착했을 때 낯설어서 한 번, 떠날 때쯤 배고파서 한 번 천지를 뒤흔들었다. 기운이 좋은 아이다.


잠투정 섞인 격렬한 보챔은, 이모 생각에, 보상심리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아기는 태아 때부터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 양수의 냄새, 감정 상태를 기억하고 내면화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열 달간 뱃속에서 평화로이 지내다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늘 함께 했던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가 갑자기 지워지고, 적막이 흐르는 어두운 곳에서 낯선 사람들 손에 맡겨져야 했던 아기는 무서웠을까? 화가 났을까? 

뒤늦게 달려와 품에 안아준 엄마를 원망하고 있을까?


미안하다고, 고맙고, 기특하다고,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이야기해주리라.

많이 보채면, 더 많이 꼭 끌어안아주리라. 기꺼이.


오늘은 아침에 지민이와 함께 세 시간이나 더 잤다. 눈을 떠 보면 아기가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나의 아기다. 이 새로운 생명체가 내 몸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자식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당장에라도,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심장이 필요하다면

당장 달려 나가 내 앞섶을 풀어헤치리.


인류는 높은 지능과 기술의 발달로 세대를 이어온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무모하고 억척스러우며, 감히 수치로 따질 수 없는 강도의 사랑을 품은 어미들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제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이며,

아이가 경험하는 모든 희로애락이

곧 나를 뿌리째 뒤흔들 것임을 또렷이 직감했다.


151031 [1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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