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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Jan 30. 2023

자식을 즐겁게 해줘야겠다는 사명감

다시 보니 무척 아름다운 길이었구나.




몸놀림이 어제보다 더 날렵해졌다.

‘두부’, ‘우유’를 정확히 발음하며

애교와 분노의 강도가 동시에 한껏 세졌다.


160928




서봉숲 공원에 유모차를 끌고 갔었다.

모래장난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지민이 화장실 없는 공터 뙤약볕에 앉아 응가를 한 것도 괜찮았다.


돌아오는 도중 길을 잘못 들었다.

체감 80도가량 경사가 진 비탈길을 유아차를 끌고 올라가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포장된 길도 아니었다.

지민은 자꾸만 내리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탈출을 시도했다.


여차저차 그곳을 벗어나 놀이터에도 갔다. (집에 가지 그랬어.)

아기는 미끄럼틀로 돌진했다.

“타까? 타까? (탈까? 탈까?)”를 반복했다.

자식을 즐겁게 해 줘야겠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나는 누가 봐도 가벼워 보이진 않는 지민을 안고 미끄럼틀을 수십 번씩 오르내렸다.

내 엉덩이는 까매지고, 팔다리는 후들거렸다. 급경사 비탈길의 후유증도 한몫했으리라.

지민은 계속 까르르깍깍 웃었다.

“타까? 타까?”를 연신 외쳤다.


몹시 고된 하루라고,

유독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나도 웃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비탈길.

사진엔 잘 나타나있지 않지만, 분명 엄청난 급경사였다.

그때의 수난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찍었던 사진인데

다시 보니 무척 아름다운 길이었구나.


시야를 좀 더 넓게 두었다면

그때도 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을까.


낯선 장소에서

혹여라도 어린 생명이 다칠까

조마조마했던 나의 마음을

더 도닥여줘야지.


1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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