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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Feb 25. 2024

밤산책

다 괜찮다고.


산책은 하루 두 번 혹은 세 번,

때에 따라 네 번도 나갔다.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걷게 할 때도 있고

업을 때도 있었다.

짧게, 깨끗하게 산책해야 할 땐

업었다.

에너지 분출과 신체의 균형적 발달을 위해선

자유로이 걷게 했다.


밤산책을 나갔다.

굳이 늦은 밤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간 이유는

곧 잠에 들 시간인데도 아이가 흥분 상태여서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등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엄마의 심장소리, 자장가, 밤공기의 촉감 따위를 감상하다가

꿈나라로 떠날 수 있도록.


이 과정은 상상하는 것보다 평화롭지만은 않다.

육아의 대부분이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민이 짜리 몽땅한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 곳은 대체로 집에서  더 멀어지는 방향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결코 그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짜낸 에너지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밤 시간 엄마의 멘탈엔 빨간 등이 점멸한다.


“거긴 다음에 가자. 오늘은 안 돼요.”


’다음‘을 모르는 아이는

다리를 파닥거리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예상했던 바가 아닌 건 아니나,

대비할 수도 없는 종류의 상황이다.

대책과 대비라는 건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수반되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

나에겐 에너지가 없었다.

아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차근차근 달래며 설득해야 했지만

다 귀찮았다.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로 뇌가 작동하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졸음 섞인 비명이 점점 커졌다.

곧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울분이 치솟았다.


”나도 힘들어.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라며 15개월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결국 짜증을 터뜨렸다.


“이쪽으로 가야 해! 늦었단 말이야!

거긴 내일 간다고 했잖아!”


지민은 더 큰소리로 울었다.

갑자기 앙칼진 말을 내뱉은 엄마가

위협적으로 느껴져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었다.

분노의 울음이었다.

지민은 왠만해선 슬퍼하지 않는다.

분노한다.

이런 경우 내가 한 발 물러나지 않으면

울음이 더 강력해진다는 걸

1년 3개월 가량의 동거 생활 끝에 알아냈다.


심호흡.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짜증과 울분으로 가빠진 호흡이 잦아들자

그 순간 아기와 나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점에

엄마의 무서운 목소리를 오늘의 마지막 기억으로 담고 잠들게 할 순 없었다.


화제를 돌릴 겸 살살살 장난을 치면서

겨우겨우 달래 집으로 왔다.


*


잠자리에 얼굴을 마주하고 누웠다.

지민의 눈꺼풀에

졸음요정이 내려앉았다.

급격히 치솟았던 짜증이 가라앉은 자리에

나른함이 똬리를 틀었다.

아이가 듣건 말건 혼잣말하듯 천천히 이야기했다.


“지민아, 엄마랑 밤산책 하는데 그렇게 막 떼쓰고 소리 지르면 어떡해? 엄마 너무너무 섭섭했어. “

그 때,

“응.”


응?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반응을 했다.

그때까지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들은

‘대상이 있지만 없는 말’들이었다.

내 언어들은 허공에 투명하게 흩뿌려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한 마디 더 해봤다.


“다음부턴 안 그럴 거지? “

“응”


바야흐로 모녀간의 쌍방소통 시대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얼른 한 마디 더 보탰다.

꼭 해야 할 말이었다.


“엄마도 지민이한테 짜증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네에.”

“사랑해, 지민아.”

“네에.”


이제 막 1년 3개월을 살아낸 아이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내 영혼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치의 후회가 밀려와 가슴이 묵직해졌다.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 어디쯤에도 눈이 있어서

그것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너의 짜증은 온당치 않았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오늘도 나는 잘못했구나.


시무룩해질 즈음

잠들기 직전의 아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가져다 자신의 포실포실한 뺨에 댔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가

묵직하게 굳어있는 내 가슴을 토닥였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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