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괜찮다고.
산책은 하루 두 번 혹은 세 번,
때에 따라 네 번도 나갔다.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걷게 할 때도 있고
업을 때도 있었다.
짧게, 깨끗하게 산책해야 할 땐
업었다.
에너지 분출과 신체의 균형적 발달을 위해선
자유로이 걷게 했다.
밤산책을 나갔다.
굳이 늦은 밤 아이를 업고 밖으로 나간 이유는
곧 잠에 들 시간인데도 아이가 흥분 상태여서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다.
등에 묶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엄마의 심장소리, 자장가, 밤공기의 촉감 따위를 감상하다가
스르륵 꿈나라로 떠날 수 있도록.
이 과정은 상상하는 것보다 평화롭지만은 않다.
육아의 대부분이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민이 짜리 몽땅한 검지 손가락을 세워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가리켰다.
그런 곳은 대체로 집에서 더 멀어지는 방향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결코 그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짜낸 에너지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밤 시간 엄마의 멘탈엔 빨간 등이 점멸한다.
“거긴 다음에 가자. 오늘은 안 돼요.”
'다음'을 모르는 아이는
다리를 파닥거리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예상했던 바가 아닌 건 아니나,
대비할 수도 없는 종류의 상황이다.
대책과 대비라는 건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수반되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다.
나에겐 에너지가 없었다.
아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차근차근 달래며 설득해야 했지만
다 귀찮았다.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로 뇌가 작동하지 않았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졸음 섞인 비명이 점점 커졌다.
곧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울분이 치솟았다.
”나도 힘들어. 넌 왜 그렇게 이기적이야!“
라며 15개월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결국 짜증을 터뜨렸다.
“이쪽으로 가야 해! 늦었단 말이야!
거긴 내일 간다고 했잖아!”
지민은 더 큰소리로 울었다.
갑자기 앙칼진 말을 내뱉은 엄마가
위협적으로 느껴져 슬퍼서 우는 울음이 아니었다.
분노의 울음이었다.
지민은 왠만해선 슬퍼하지 않는다.
분노한다.
이런 경우 내가 한 발 물러나지 않으면
울음이 더 강력해진다는 걸
1년 3개월 가량의 동거 생활 끝에 알아냈다.
심호흡.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후우우우우-
짜증과 울분으로 가빠진 호흡이 잦아들자
그 순간 아기와 나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시점에
엄마의 무서운 목소리를 오늘의 마지막 기억으로 잠들게 할 순 없었다.
화제를 돌릴 겸 살살살 장난을 치면서
겨우겨우 달래 집으로 왔다.
*
잠자리에 얼굴을 마주하고 누웠다.
지민의 눈꺼풀에
졸음요정이 내려앉았다.
급격히 치솟았던 짜증이 가라앉은 자리에
나른함이 똬리를 틀었다.
아이가 듣건 말건 혼잣말하듯 천천히 이야기했다.
“지민아, 엄마랑 밤산책 하는데 그렇게 막 떼쓰고 소리 지르면 어떡해? 엄마 너무너무 섭섭했어. “
그 때,
“응.”
응?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반응을 했다.
그때까지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들은
‘대상이 있지만 없는 말’들이었다.
내 언어들은 허공에 투명하게 흩뿌려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한 마디 더 해봤다.
“다음부턴 안 그럴 거지? “
“응”
바야흐로 모녀간의 쌍방소통 시대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얼른 한 마디 더 보탰다.
꼭 해야 할 말이었다.
“엄마도 지민이한테 짜증내서 정말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네에.”
“사랑해, 지민아.”
“네에.”
이제 막 1년 3개월을 살아낸 아이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내 영혼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치의 후회가 밀려와 가슴이 묵직해졌다.
묵직한 감각이 느껴지는 부위 어디쯤에도 눈이 있어서
그것이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너의 짜증은 온당치 않았다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오늘도 나는 잘못했구나.
시무룩해질 즈음
잠들기 직전의 아이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가져다 자신의 포실포실한 뺨에 댔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숨소리가
묵직하게 굳어있는 내 가슴을 토닥였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