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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Mar 02. 2024

파도를 넘어

우리가 맞잡은 손들을

아빠의 사랑은 언제나 거칠다.


160918 13개월


엄마 없는 7시간을

아빠와 단 둘이 보낸 아기는

모래밭에서 맨발로 레슬링 하며 뒹굴고,

아빠가 판 구덩이 속에 파묻혀

모래찜질을 당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헤비급인 아빠와

(내 눈엔) 작고 여리기만 한 딸이 함께 했다는

그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아

참 다행이다.


지민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편안해 보인다.


당신,

좋은 아빠인가 보다.


161008 14개월


길고 길었던 날들이 지났다

내일은 드디어 남편의 휴일이다.


이번 주엔 아기가 낮잠을 충분히 자지 않았다.

그만큼 나도 에너지가 덜 충전된 것 같다.


아기는 날마다 무럭무럭 성장 중이다.

자주 만나는 8개월짜리 동생이 울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왜? 왜? 왜?” 하며 나름대로 달래 본다.


아과(사과), 연시, 내려, 저쪽

민(김), 떡, 자전(자전거), 앙츙(삼촌)

등을 말할 수 있게 됐으며,

기저귀를 쓰레기통으로 가져갈 줄 알게 되었다.


지민의 성장과 더불어

나도 좀 어른으로 성장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어제, 오늘은 마음이 참 고되다.


나도 지민이 성장하는 속도의

반만큼이라도

어른이 돼가는 중이면 좋겠다.


161010 14개월


매일매일

홀로 ‘종일 육아’에 매진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충분히 돌보지 못한대서 오는

울분의 감정 쓰나미가 몰려와

몸과 마음을 덮쳐버린다.


그럴 때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셋이서 손을 꽉 붙든 채

파도를 넘어야만 한다.


대체로 잘 못 넘긴다.

감정의 파고 안에서 사정없이 핑그르르 돌고,

꼬르륵꼬르륵 눈물을 삼키고,

괜찮아진 줄 착각하고 한숨 돌리다

정체 모를 것에 다시 배신당하곤 내동댕이쳐진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맞잡은 손들을

결코 놓아버려선 안된다.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다시 고요해진 사위 속에서

따뜻한 손길과 다정한 음성,

아기의 웃음소리가

날 일으켜줄 테니.


161011 14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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