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自由 그리고 불굴의 의지
지민이 어제부터 아프다.
체온계에 40도가 넘게 찍힌 건 살면서 처음 본다.
고열이 내릴 때까지 친정에 있기로 했다.
친정엄마가 열패치를 사 왔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붙이기 싫다며 격렬히 저항하고 오열했다.
그때,
“한별아, 이거 봐. '아삐'(할아버지)도 한다.”
친정아빠가 휴지를 접더니
열패치처럼 자신의 이마에 붙였다.
그러자,
저항과 분노 정신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던 두 살의 눈 빛이 스르르 온순해지더니
저녁 시간까지 순순히 붙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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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열이 내렸다!
이전처럼 이틀 정도면 끝나겠지 했는데
만 3일을 채우고 오늘 새벽까지 앓았다.
나, 친정엄마, 아빠 그리고 코 골아서 애 깨웠다고
새벽부터 나에게 구박받은 남편까지
아주 길고 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큰 고모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기는 여럿이 키워야 한다고.
몸이 아파 나만 찾고,
종일 짜증을 내고,
또 나에게만 매달리는 아기를 데리고
아기와 나 둘이서만 집에 있었을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다.
(오늘 하루 동안만 “엄마” 소리를 천 번도 넘게 들은 것 같다.)
화려한 팀워크로 지민은 다시 웃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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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앓았던 탓일까?
아직 제 컨디션을 완전히 찾진 못한 것 같다.
많이 징징대고
자주 피곤해한다.
자세히 보니 작은 어금니도 올라오는 중이다.
어제는 지민의 질풍 속에서 흔들리는 갈대 같은 기분을 맞춰드리느라
남편과 함께 갖은 수모(?)를 당하고 온갖 고초(?)를 겪었다.
남편은 통화로만 전해 들었던
‘컨디션 난조 아기 돌보기’ 체험을 실제로 해보곤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럼에도 몹시 다행인 건
아이가 뭔가를 계속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애나 어른이나 식욕이 살아난다는 건 긍정 신호다.
식빵, 떡, 감자, 귤을 연달아 먹었다.
계란을 달라고 해서 계란말이를 만들어 드렸는데
잠의 요정님이 오시고 말았다.
졸리다면 그냥 자면 될 텐데……
161130
컨디션 난조인 지민을 돌보느라
일주일 넘게 외출을 못하고 있다.
아픈 이후론 산책을 적극적으로 원하지도 않는 것 같다.
겨울이 오니 가짓수가 늘어난 옷을 입히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아이를 쫓아다니다가 나가기도 전에 지쳐버린다.
오늘은 유독 고립되고,
답답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
혼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끄적거리고,
요가도 하며
뭔가 생산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부글부글 끓는다.
좋은 사람들과 낄낄거리며
야외에서 맛있는 안주에 소주도 들이켜고 싶다.
그리곤 내일 아침 늦잠까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게으른 육아를 하고 있는데
지민은 나의 작은 응수에도
꺄륵꺄륵 웃어준다.
에휴.
저녁이나 차리자.
161203
지민의 낮잠패턴이 무너졌다.
나의 자유도 무너졌다.
사람이 일주일 가량 연이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전혀 누리지 못하면
울분에 사로잡히는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오늘은 반드시 제시간에 눕혀서 재우겠노라 다짐했다.
오후 1시 20분경 방에 데려가 눕히고
나는 죽은 척을 했다.
지민은 무려 한 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종알거리며
내 콧구멍과 귓구멍에 여러 가지 것들을 넣어보고,
(예를 들면, 자신의 손가락-은 기본-, 베개의 지퍼 손잡이, 어디에서 찾은 건지 알 수 없는 고무줄, 꼬리 빗의 꼬리 부분, 자신의 혀!)
명치 위에 털썩 앉아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아이를 재울 때 언제나 복근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박력 있는 기합 소리와 함께 내 머리카락 뭉텅이를 잡아채며 깔깔거렸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기의 악력은 상상 외로 강력해서 제대로 잡히면 정말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아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죽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기 코드를 만지작거려서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다가
다시 내 명치에 머리를 툭 떨구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자유自由
;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
내가 이겼다.
뭐에 이겼는진 모르겠지만.
1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