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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May 14. 2024

아이가 엄마를 부를 때

현존


이리와! 지지야, 만지지마! 빨리와! 더럽다니까!
다친다! 조심! 거 봐, 엄마가 뭐랬어! 지지야! 빨리!
이리와! 만지지마! 만지지말라니까! 엄마 간다!
엄마 간다니까! 갈꺼야! 지지! 위험! 안돼! 다쳐!
이리와! 얼른! 아야해! 춥다! 가자! 엄마 간다! 이리와!


대략 (좀 과장해서) 팔백 여든 세 번 정도 외치며 집 근처 20여분 거리의 도서관까지 한 시간에 걸쳐 걸어갔다. 아이는 끝 없이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들 앞에서 멈추고, 들여다보고, 만져보며 탐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란하게 책을 읽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다시 걸어 돌아와야지 했던 순진한 꿈은 스매싱으로 날려버렸다. 애초에 도서관에 가고 싶었던 건 나였지 아이가 아니었다. 결국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빵집으로 들어가 모닝빵을 먹으며 낄낄대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


한 번의 낮잠 후 이번엔 정해진 목적지 없이 산책을 나갔다. 시간 제한도 두지 않았다. 그저 지민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민의 방식대로 세상을 바라봤다.


하염없이 느리고 영원 같은 육아의 시간은 대체로 숨이 막히지만, 

어쩌다 한 번씩,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고의 행복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런 날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완 된 상태에서 천천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시간. 


아이는 매순간 철저히 현존하며, 

이곳 저곳으로 도망치려는 엄마를 불러 세운다.  



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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