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인류세의 모험>> by 가이아 빈스
"우리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우리는 날개 없이 날 수 있고 아가미 없이 잠수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을병을 극복할 수 있으며 심정지 후에도 소생할 수 있다...
나비의 이동경로, 빙하가 녹는 속도, 바다의 질소 농도, 들불의 빈도 등등이 변하고 있음... 이 모든 사건은 한 가지 공통점으로 귀결되었다. 바로 인간의 영향이었다...
우리가 전 지구적 힘을 휘두른다는 깨달음은 이 세계의 시공간 속, 그리고 다른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 위치를 정의하는 지금의 과학적, 문화적, 종교적 철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인식의 특별한 전환을 요한다... 인간은 더 이상 또 하나의 종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지구의 생물화학적 조건을 의식적으로 재편하는 최초의 종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어서 표지가 없다.
2014년 책이고, 과학책으로 분류될 만큼 지식과 정보 위주이긴 한데 쉽고 재밌게 읽힌다. 영국 왕립학회에서 올해의 과학책으로 뽑혔다는데 이거 하나만 제대로 읽어도 기후문제에 대한 기본지식이 싹 갖춰질 듯하다.
특히 인용 부분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는 "신화"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존재 "로서의 힘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신화적 서술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아마 내 기억에는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읽고 흥미로웠다. 부르주아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세계관에 뿌리내린 근대문학은 인간이 휘두르고 있는 집단적 힘과 영향을 직시하지 못하게 맹점의 영역을 남겨놓는다고 했다. 자연과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인식의 틀이 바뀌는 것이, 아니 인식의 틀을 바꾸는 것이, 그래서 기후변화시대의 인지부조화를 극복하는 것이 기후문제 극복의 근본적인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그 인지부조화, 맹점의 영역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문학은 이제라도 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이 쓰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더더 필요하다) 자기가 신인지도 몰랐던 화자들이 무너져가는 세계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신적 힘을 얼마나 엉망으로 휘둘러왔는지, 그래서 자신의 신됨의 바탕이 돌이킬 수없이 무너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더 늦기 전에 행동을 돌이키는 우리들의 이야기.
근데 그걸 포스트 아포칼립스나 sf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이미 와있는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일까 속속들이 탐구하는 소설과 시들... 그런 것이 읽고 싶고 궁금하다. 그것 역시 우리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전대미문의 영역이다 그야말로 '인류세의 모험'이다.
최악의 관점에서 이미 늦었다고 해도, 어쨌든 인류라는 종이 기후변화라는 전대미문의 환경을 맞이하여 서로의 인지 방식과 반응, 고민을 듣고 공감하는 데 있어서 문학 이상의 소통 수단이 있을까.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민담과 신화를 물려주었듯 우리는 후대에 인류세 문학을 물려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사진은 표지가 없어서 골랐지만 이 포스팅과 상통하는 것 같다. 해운대에서 찍은 것인데, 바다와 모래사장보다도 웅대한 구름보다도 높은 건물이 더 풍경의 주인공이다. 지금 인공물들의 위치가 다 그러니 당연한 것 같지만, 과연 당연한가. 수만 년 진화의 역사 중에 우리는 아주 짧고 예외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