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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걀머리 Dec 20. 2023

"일인칭 가난" 안온

"가난은 이유가 없는 벌이다.”

<<일인칭 가난>>


“‘가난’을 주어로 문장을 쓸 때는 심히 망설였지만, 그래도 썼다.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일인칭의 가난을 쓸 테니까. 세상에는 빈곤 계측 모델로는 잡히지 않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필요하다.”


가난 때문에 작가 안온이 겪은 자아의 ‘찢어짐’이 마음에 남는다.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을 항상 분리하고, 평행우주 속 자신을 상상하며 현실의 결핍을 달래는 습관.


“나는 내가 주공아파트에 갇힌 공주라고 상상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야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살기가 버거운 사람들의 세계가 찢어지는 것이 법칙이라도 되나.”


작가의 엄마는 아작 난 무릎을 견디며 일해서 머리 좋은 딸을 학원에 보내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너무도 당연히 여기는,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려면 특히 더 가져야 했을 교육의 기회에 대해 회상할 때조차, 작가는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변명을 해야만 한다. ‘기초수급을 받으면서 감히 학원을 가?’라고 생각할 독자를, 평생 의식해 온 그 시선을 성인이 된 지금도 의식하며.

대학을 다니며 과외를 하고, 그 사이사이 무한 리필 고깃집에서 주 4일, 12시간씩 일하면서도 “누구는 공사장에서 일하면서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던데 나는 왜 이럴까?”하는 자책으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습관.

그런 인식들이 바로 작가가 말한 ‘오장육부에 붙은’ 가난의 그림자다.

“수급자 생활에서는 탈피했지만, 가난을 탈피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스무 살부터 시작한 학원강사 일에 이력이 붙어 월 소득은 높아졌으나, 20년간 내 오장육부에 붙은 가난은 쉬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남들만큼만 돈을 벌면 씻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가난에 대한 이해도,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목소리와 논의도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회. 하긴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주장하는데 시장과 여당 정치인들이 거기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서서 지탄하는 나라. TV는 온통 연예인들 집 자랑, 돈 많은 사람들 자식 교육 자랑, 먹방에 해외여행… 사회의 한 구석(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에서는 이렇게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다.


"왜 하필 나일까. 왜, 도대체 내가 왜, 가난을 베개로 베고 비참함을 이불로 덮어야 할까."
"가난은 이유가 없는 벌이다.”


그나마 내가 대학생 때나 그때쯤에는, 정치인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척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가난은 점점 더 음지로 강제로 숨겨지고, 가진 사람들의 시각으로 물 샐 틈 없이 꽉 짜인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가난과 소외된 이들의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훨씬 더 많이 들려지고,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기의 시간을 기꺼이 거기에 쏟고 같이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이다.”


너무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으로서 작가 안온이 챕터마다 써 내려가며 겪었을 그 미묘한 조심성과 용기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화도 났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일화...



더 쓰이고 말해지지 않기 때문에 두 번째 사진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저 교수는 왜 자신이 이 책에 등장할 만큼 안온의 기억에 남았는지 이제는 알까? 그렇다고 교수가 특별히 나쁜 건 아니다. 저런 몰이해는 너무나 흔하다.  수능 비율이 줄어든 이후 경제적 형편이 좋은 집안 자제들의 서울대 연고대 입학 비율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그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던 부유한 학부모가 생각난다. 이 책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자원을 수능으로 이겨내고 대학에 갔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고등학생을 가르쳤던 사람의 입장에서, 요즘의 입시 제도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지금의 입시제도에서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고착화된 사회 계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 본 사람들이 지금의 입시제도를 묵인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가난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것은 경제, 정치 분야뿐 아니라 출판, 문학도 그런 것 같다. 가난은 그 한가운데 있지 않고 특별기획, 예외일 뿐이다. 이 책을 덮으며,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무엇을' 쓰느냐도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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