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너무 올라서, 마트에서 자꾸 주춤하게 된다. 우유는 안 사 먹은 지 오래고 과일은 가끔 귤이나 만 원어치 살까, 반찬도 두 개 먹을 걸 하나로 줄이고, 채소도 필요할 때 조금 사는 것 말고는 쟁여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큰 종량제 봉투에 양파와 단무지만 달랑 넣어 들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물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내 봉투에 든 것은 비싼 물가 때문에 고심해서 고른 빈약한 저녁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웃었다. 브루노 슐츠의 소설 맨 첫 장 이 대목이 생각나서.
“아델라는… 마치 불타오르는 대낮의 광채 속에 나타나는 과일의 여신 포모나처럼 장바구니에서 태양의 색색가지 아름다움을 흘리며 시장에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투명한 껍질 아래 과즙으로 가득 찬 윤기 나는 분홍빛 버찌와 맛으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도 뛰어난 향기를 풍기는 신비스러운 검은빛 버찌였으며 금빛 과육 속에서 기나긴 오후의 정수를 담고 있는 살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과일의 시 곁에 그녀는 건반 같은 갈비뼈가 에너지와 힘으로 부풀어 오른 송아지 고기, 해초, 거의 죽어버린 문어와 해파리를 내려놓았다.(9~10쪽)
그가 세상을 인식한 방식과 나의 방식은 얼마나 다른지.
시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에서 그 생명의 원천 - 태양과 맛과 향기, 그 형성 과정의 고뇌까지도 보이는 사람에게 매 순간은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비할 데 없이 자기만의 순간일 것인가.
그에 비해, 마트에 있던 수많은 것들을 가격 대비 효율로만 생각하는 나의 한 순간은 얼마나 납작하고 빈곤한지. 그리고 나의 것이 아니라 남에 의해 정해진 것인지.
사람과 사물 하나하나 속에 꼬깃꼬깃 접혀 들어 있는 11차원을 투시라도 하는 사람 같은 브루노 슐츠의 서술들... 이 책을 잠시 뒤척이는 것만으로도 내 경직된 사고와 오감이 해독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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