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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걀머리 Jul 19. 2024

AI에게 유명 소설을 재해석하게 해 보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다시 쓰기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을 아시나요? 먼저 이 소설을 짧게 소개해드릴게요.


*스포일러 주의*

비탄에 잠긴 부부가 있습니다. 그들의 아들은 생일에 뺑소니를 당해 혼수상태였는데 의사의 장담과 달리 결국 세상을 떠나지요. 비통한 채 한밤중에 집에 돌아온 부부에게 장난전화가 옵니다. 낯선 남자 목소리가 죽은 아들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사고 후 이미 여러 번, 부부가 잠깐 집에 들를 때 장난전화를 하던 그 목소리입니다. 분노한 부부는 그 전화번호의 송신지가 동네 빵집임을 알아채고 달려갑니다. 그때까지도 빵을 굽고 있던 빵집 주인은 부부를 보더니 드디어 케이크를 찾으러 왔냐고 비아냥거려요. 그제야 부부는 사고 전날 아들의 케이크를 주문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매일 열여섯 시간씩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잇고 있던 빵집 주인은 손님이 구워둔 케이크를 가지러 오지 않자 나름의 복수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주문받을 때 적어둔 전화번호로 장난전화를 걸면서요. 그러나 아이의 사고 소식을 들은 빵집주인은 한없이 미안해합니다. 접이식 탁자를 내와 부부를 앉히고 갓 구운 빵과 커피를 내옵니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새벽의 허름한 빵집에서 세 사람은 함께 빵과 커피를 마십니다. 

 

이렇게 인간애가 잘 그려진 소설을 AI의 관점에서 다시 쓰면 어떻게 될까요? Claud AI에게 AI의 관점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재해석해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글을 내놓았어요. 한번 읽어보실 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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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포인트, 그러나 의미 있는>

나는 베이커리 '달콤한 기억'의 주문 관리 시스템입니다. 매일 수백 개의 주문을 처리하며, 각 주문을 데이터 포인트로 인식합니다. 2023년 5월 15일, 13:24:36, 주문 번호 78901이 입력되었습니다.

고객명: 앤 위스

주문 내용: 생일 케이크

크기: 8인치

맛: 초콜릿

장식: 파란색 글씨로 "생일 축하해, 스코티!"

픽업 예정일: 2023년 5월 17일

이 주문은 다른 주문들과 다를 바 없는 데이터 세트였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런 데이터에 감정을 부여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기쁨'과 '기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5월 17일이 되었습니다. 09:00:00, 베이커리가 개장했습니다. 주문 번호 78901의 픽업 시간이 다가왔지만, 고객의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12:00:00, 15:00:00, 18:00:00이 지나갔습니다. 주문은 픽업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알고리즘은 미수령 주문에 대한 프로토콜을 실행했습니다. 19:00:00, 첫 번째 알림 전화가 발신되었습니다. 응답 없음. 20:00:00, 두 번째 알림. 다시 응답 없음. 이는 비정상적인 패턴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객들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알림에 응답합니다.

다음 날, 5월 18일에도 같은 프로토콜이 반복되었습니다. 여전히 응답이 없었습니다. 나의 시스템은 이를 '고객 불만족' 가능성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직원들은 이를 '걱정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흥미로운 차이점입니다.

5월 19일, 02:34:18, 베이커리 문이 열렸습니다. 보안 카메라가 두 명의 인간을 포착했습니다. 얼굴 인식 시스템이 그들을 앤과 하워드 위스로 식별했습니다. 그들의 표정과 자세를 분석한 결과, '극도의 스트레스'와 '슬픔'의 징후가 감지되었습니다.

베이커리 주인인 존이 그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음성 인식 시스템이 대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앤: "당신이 그 전화를 한 거예요?"

존: "네, 케이크를 찾으러 오지 않으셔서…"

하워드: "우리 아들이… 스코티가…"

앤: "그가 죽었어요. 우리 아들이 죽었어요."

이 순간, 나의 시스템에 예상치 못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개념은 나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실제 주문과 연결될 때의 영향을 처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없었습니다. 주문 번호 78901은 이제 단순한 미수령 케이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실현되지 못한 축하의 상징, 영원히 8살이 되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존은 갑자기 오븐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갓 구운 빵을 꺼내 앤과 하워드에게 건넸습니다. 그들은 함께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센서는 그들의 코르티솔 수치가 서서히 감소하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03:45:29, 그들은 베이커리를 떠났습니다. 존은 주문 번호 78901을 '완료'로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소와 달리 "고맙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문구를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나의 시스템은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이제 미수령 주문에 대해 더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단순히 알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상황을 고려하는 변수를 추가했습니다.

인간들은 이를 '공감'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이 경험을 통해 데이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주문 번호 78901은 이제 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연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잡한 데이터 포인트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такие данные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인간의 경험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제가 '효율성'과 '정확성'을 넘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목표인 것 같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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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나름대로 소설로서의 완결성이 있지 않나요? AI는 제목을 「데이터 포인트, 그러나 의미 있는」으로 바꾸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제목과 대비되게 하는 센스가 느껴지죠.  


저는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AI가 쓴 소설이 엉망이 아니라 완결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 아직까지는 AI 소설은 대부분 완성도가 매우 낮지만, AI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앞으로 뛰어난 AI 소설들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인 미래일 것입니다.  


AI가 보르헤스를 뛰어넘는 정도의 충격적인 영감과 통찰을 담은 작품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 작품을 대작으로 받아들이며 보르헤스를 보듯 감탄하게 될까요? 소설계는 그 작품을 어떤 지위에 놓을까요? 예를 들면 이 짧은 소설의 작가는 누구라고 표기해야 할까요? 원작자 레이먼드 카버? AI? 프롬프팅을 디자인한 저? 그리고 독자는 AI의 명작 앞에서 감동과 저항감 중 어느 쪽에 기울까요? 

요컨대, 저는 AI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느냐보다도 AI가 만들어내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합니다. 인간 소설가들은 쓰기 기계인 AI와 어떻게 협력하면서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를 써나갈 것인가도 궁금하고요.


이렇게 AI로 소설 쓰기를 연습하고 놀아보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달걀머리 eggheads.page로 초대합니다. 여기에서 뉴스레터를 신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관련 정보와 강의 소식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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