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 주는 동동이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 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 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 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 만은 우리가 알고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 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허 형 만 -
누그러진 추위에 여행을 나섰다. 어디를 갈까. 짧은 고민 끝에 전주로 정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가끔 SNS에서 전주 한옥마을이 보았기에. 한복을 입기에. 한옥을 살고싶기에. 전주가 괜찮아 보였다.
교동 성당 앞 스타벅스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복을 입은 젊은 이들이 총총 지나갔다.
그때쯤 아이가 문자를 보냈다.
- 아 쌤 저 혼자 살고 싶어요. 혼자 사는 방법 없어요?
- 음. 방법은 있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지. 무슨 일인데?
최근 퇴소한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퇴소 전 "나가면 집에만 있을 거예요"라고 연신 재잘거렸던 아이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오빠가 약속한 걸 지키지 않는단다. 무슨 약속인지 물어보니. 용돈을 주기로 했는데, 주지 않는다 했다. 아이가 오빠에게 따지니 오빠는 "그냥 한 말이다"라고 툭 내뱉었다 한다. "헐".이라는 생각이 들며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선생님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을 톡으로 보냈다. 이런저런 톡이 오가다 끊어졌다. 여행 중 여럿 아이들의 연락이 왔다. "저 일하고 있어요", "쌤 잘 지내시나요" 사소한 일상 문자가 온다. 대답이 늦어질 때도 있고, 대답이 없을 때도 있다. 나도. 아이들도.
짧은 2년, 나날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고 떠나보냈다. 그중 걱정도 하고, 잊어도 간다. 다만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분명 재는 나가서 사고를 칠 거야" 란 생각을 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어찌 내 생각대로 아이들 삶이 결정될 수 있을까. 가만히 응원하며 격려만 하련다.
시인은 다가서지 않으면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요즘 우린 너무 많은 것에 말하는 것 같다.
나라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일에 대해. 너에 대해. 나에 대해.
가까이 다가 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