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로 본 세상
정확히 12년 전 나의 첫 애인이 생겼다. 연상의 그는 듬직하고 중후한 멋이 있었다.
매번 값비싼 데이트 비용을 지불해야 됐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즐거움이자 설렘이었다.
아직도(정확히 12년 동안) 난 그와 연애를 하고 있다. 바로 35mm필름 카메라다.
며칠 전 갤럭시9 휴대폰이 출시되었다. 갤럭시가 가장 크게 자랑한 것이 카메라다. 고가의 카메라 못지 않는 기능과 성능. 광고 속 카메라는 내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년에 두어번은 수리점에 맡겨지는 내 카메라는 4차산업혁명과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카메라다.
기억을 거슬러, 낡은 카메라를 만난 건 대학생 시절이다. 막 DSLR이 보급되던 그 때 난 필름카메라를 가졌다. 중고나라를 통해 7만원에 구입한 첫 카메라가 캐논 QL-17이었다. 40mm / 1.7F 렌즈는 초보자가 사용하기에 적당한 필름 카메라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내 집에는 낡은 카메라 10여종이 기거하고 계신다.
내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의미있는 사진을 얻고 싶어서다. 잘 나온 사진은 나에게 필요 없다. 구글을 검색하면 전문가들이 찍어낸 사진들이 쏟아져 나온다. 필름카메라는 중노동(?)을 요구하는 요물이다. 35mm필름을 구입하기 위해 사진관을 찾아야 하지. 필름을 넣고 감아야 하지(이게 쉬운 것 같지만 초보시절 날려버린 나의 35mm 필름이 셀수가 없다), 감도, 초점, 조리개 맞춰야하지. 찍으면 현상해야지. 스캔해야지. 인화해야지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단계를 거쳐야 내게 온다. 또 돈은 얼마나 드는 지, 이게 한번 찍을 때 마다 만원이 넘는다. 커피 줄이고, 교통비 줄여 이렇게 찍고 다니면 반무제한으로 찍는 디지털에게 홀릴 때도 있다.
이 고생을 하며 왜 필름 카메라를 찍느냐고? 다시 말하지만 의미있는 사진을 얻고 싶어서다.
우린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다. 나이, 성별, 국적, 학력, 부모, 외모 등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 그 프레임을 당신은 보고 있는 가? 난 필름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공부한다. 간편할수록 생각의 깊이는 얆아 진다. 필름카메라는 내 생각을 조금씩 확장해준다. 그래서 난 이 친구를 바꿀수 없다.
12년 간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때론 슬프고, 허무하고, 가슴 벅찬 이야기들이 아닐 수 있다. 기대하지마시라. 다만 일상에 소박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 맛을 낼 테니 허기 지시면 한번씩 보러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