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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엄마는 맏형을 삼켰다.

글 읽어 주는 동동이

by 동동이

거기서 엄마는 맏형을 삼켰다. 엄마는 맏형을 세상에 내보낸 것이 잘못되었거나 너무 일렀다고 생각했던 거다. 태어나며 앞다리가 부러진 맏형이 개의 한 세상을 몸으로 비비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을 엄마는 견딜 수가 없었던 거다. 엄마는 맏형을 다시 엄마의 따스하고 축축한 몸속으로 돌려보내기로 작정했고, 맏형은 엄마의 몸속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렇게 맏형은 죽었다. 죽었다기보다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엄마의 몸속으로, 그 어둡고 포근한 곳으로.


- 김훈 '개' 中 -



직장 화장실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다. 바깥 창을 보면 기왓장 주택이 보인다. 작은 마당엔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가 있다.


도로변에 위치한 그 집은 식당을 했었다. 가게를 오픈할 때 개도 나타났다. 들리는 소문엔 '유기견을 입양했다'는 이야기와 '장사를 위해 개를 키운다'는 말이 있었다. 사실을 알 순 없으나 강아지는 그 집의 마스코트(mascot)가 되었다.


서너 달 지날 무렵, 가게는 폐업했다. 식당은 망했지만 개는 모과나무 옆 자리를 지켰다.


화장실 갈 때마다 시선을 멈추곤 했는 데, 시간이 지나 시들해졌다. 개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식당이 망한 뒤 몇 주가 지났을 까?, 주인은 보이지 않고 개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설마 집주인이 버리고 간 건 아니겠지' 걱정은 되었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그 이상의 마음을 쓰진 못했다. 며칠 뒤 음식점은 가정집으로 바뀌었고, 어린 두 꼬마가 이사와 있었다. 꼬맹이들은 하루 종일 개와 뛰어놀았다. 공을 던지기도 하고, 개를 끌어안기도 하였다. 그때도 개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 콧구멍의 힘만으로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나는 좀 더 자라서 알았다.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불쌍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 - 김훈 '개' 中 -


그 개는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단순히 개목줄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 개는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사람'과 그 '냄새'를 추억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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