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가끔 도로변에 죽어 있는 고양이 사체를 볼 때가 있다. 혹시 내 차 바퀴에 또 깔리진 않을 까? 걱정하며 지나가곤 했다. 아이와 산책을 나갔다가도 포유류의 무언가가 죽어 있는 것을 보면 시선을 피하고 자리를 피한다.
벌레는 몰라도,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들에 대한 죽음은 불편하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읽었다. 철이라는 한 소년이 자신을 알아가고, 민이라는 소녀를 통해 세상을 확장해 나간다라는 플랫으로 보였다. 단순하게는.
최근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일상에 스며들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컴퓨터로, 인터넷에 자리매김하였다. 앞으로는 내가 가는 모든 곳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쌓이고 그 속에서 더 편리함을 누리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인공지능만큼이나 발전하고 있는 것이 기계다. 이미 산업화 시대부터 인간과 함꼐한 기계는 생활에 없어선 안될, 아니 인류가 살아감에 있어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되었다. 이제 기계는 단순히 공장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함께 한다. 휴먼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고 생활, 의료, 애완, 보호, 택배 등 수 없는 현장에서 이용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위에 모든 것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보면 인간처럼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면 그것들을 인간으로 볼 것인가, 기계로 볼 것인가, 인공지능으로 볼 것인가. 우리는 어떤 답을 내릴 수 있을까?
0과1로 이루어진 데이터가 억겁을 시간이 지나 사람처럼 사고한다면, 인성을 지닌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가 질문해야될 부분은 무엇일까 고민해보았다. 내 질문은 다음과 같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세상엔 사람이라고 부르기 조차 부끄러운 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이길 거부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런 이는 수 없이 많았다. 그들의 지능이 부족해서 그럴까? 아니다. 그들의 지능은 평범함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의미로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이 괴물로 변했다. 물론 선천적으로 생물학적으로 그런 사랑을 누릴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 사람을 개인화하여 살펴보면 대다수는 사랑의 결핍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내 결론은 이렇다. 수 많은 데이터가 인공지능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안에 사랑이라는 그 무언가가 들어갔을 때 비로소 인공지능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랑이라는 것을 표현하거나 정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그 애매모호한 그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린 결국 모두 죽을 것이다. 언젠가 사람도, 기계도,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우주의 관점에서 사라지고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믿고 있다. 그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