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고궁을 나서며
시 읽어 주는 동동이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淫蕩)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 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 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悲鳴)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 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 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 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 수 영 -
호텔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땅바닥을 보니 100원 동전하나가
땅바닥에 엎드러 있더군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갔습니다.
그대로 가다가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뒷걸음쳐 100원을 줍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 가던 길을 갔습니다.
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땅바닥에 떨어진게 500원이었으면 바로 손으로 집었을까?
아니, 천원짜리 지폐, 만원짜리, 오만원짜리였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별거 아닌 일 같은데 그냥 부끄러웠습니다.
요즘 국정교과서 때문에 말들이 많더군요.
머 이것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청년문제 등 많은 문제들이 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분개를 하지만 결국 나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점심메뉴가 더 중요한거 같습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온갖 사회적 불의로 투쟁의 시대에
조금은 떨어져 있어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집권 권력에게 대항하기보다는
식당 주인에게나 성질을 내는 옹졸함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시인을 보며 제 자신이 더 부끄러운건
아무런 의식도 못하고 살아간다는 게 더 부끄럽습니다.
내 피부에 와닿기전에는 어떤 문제도 내겐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문제인거 같습니다.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당장 취업자리 때문에 나는 얼만큼 작아지는 지..
기껏 먹고 살려는 일에 얼만큼 목을 매고 살아가는 지..
정말 얼만큼 저는 작은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