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문장을 만나다: ‘위대한 대화’의 시작(책리뷰)
“내가 찾아 헤맨 길의 조각들, 그 모든 답이 대화 속에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종잇조각 몇 장에서 해답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들었어요. 주절주절 혼잣말 같은 고민을 멈추지 못하던 시절이었죠. 그런 때에 한 권의 책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김지수 기자의 『위대한 대화: 인생의 언어를 찾아서』. 사실 처음에는 그저 “인터뷰집”이라는 말에 끌려 가볍게 펼쳤어요.
그런데 이 책, 참 독특해요.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마치 한 편의 큰 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요? 각각 다른 삶을 살아온 18명의 인물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한 편의 긴 대사를 쭉 이어 가는 느낌이 들어요. 종종 “그러니까 인생의 화두가 결국 하나로 모아지는구나” 싶어서 혼자 무릎을 탁 치기도 했습니다.
얘깃거리가 될 만한 사람들이 참 많아요.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 소설가 겸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
문학평론가 이어령, 작가 이민진,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 등등.
저는 원래 찰스 핸디나 다니엘 핑크를 꽤 좋아했거든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인생을 설계하고, 일과 삶을 균형 있게 꾸려 가야 할까?’
이런 고민을 짚어주는 분들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책을 읽어 보고 나니,
이분들이 꼭 거창한 문장을 말해서 좋았던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사람은 물건이 아니고, 관리 대상이 아니다”라는
핸디 할아버지의 한마디가 전부였는데, 그게 제겐 엄청 크게 들렸죠.
단순하게 들리지만, 조직 생활에서 사람을 물건처럼 취급하는 건
현실에서도 흔하잖아요.
회식이 ‘업무’가 되고, 눈치 보며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거대한 이론보다, 그 한 문장이 주는 위로가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다니엘 핑크가 후회에 대해 말한 대목도 흥미로웠어요.
“후회는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
누군가 “후회 없이 살자!” 하면,
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어떻게 후회 없이 살아?” 하고 생각하잖아요.
핑크는 “후회가 적응력을 높여 준다”고 말해요.
나쁜 짓 하거나 실수해서 ‘아이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배우는 거죠.
저도 지나가면 아찔했던 실수가 떠오르지만,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 조심하며 사는 건 맞아요.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단연 ‘함께 살아가기’라고 말하겠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라고 강조하고,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사는 건 사랑하는 일”이라는 말을 건넵니다.
크게 보면 다들 “우리 좀 사이좋게 지내자, 도울 건 돕고,
약할 때 기대는 것도 괜찮다”라는 멧시지를 보내고 있어요.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조금 뻔하고 교과서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치열하게 살아 낸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던져 준 조언이라 그런가, 유난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눈물을 쭉 빼는 장면은 아니어도,
제내심에 따뜻한 불씨가 “뿅” 하고 생겨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책을 읽다가 갑자기 제 친구가 떠올랐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친구인데, 서로 성격이 달라요.
저는 뭐든 뒤늦게 후회하며 ‘그때 이렇게 할 걸 그랬어’ 하는 스타일이고,
그 친구는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냐, 냅두자’라는 쿨한 스타일이거든요.
그동안 저는 그 친구처럼 쿨하지 못한 제 자신이 좀 찌질해 보였어요.
“나는 왜 이리 소심하지? 한 번에 딱딱 결정 못 내리고…” 이랬죠.
그런데 책에서 다니엘 핑크가 말한 “후회 = 성장의 에너지”를 읽고,
오히려 “후회를 잘하는 것도 나름의 장점이야!” 하고 어깨를 펴게 됐어요.
저 친구가 못 하는 걸 난 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어떻게 후회를 발전적으로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그 친구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후회는 내 편
“후회는 기피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동의해요.
덮어두기만 했던 후회를 오히려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제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라는 힌트를 줍니다.
인간은 자원일 뿐이 아니다
찰스 핸디의 문장은 짤막하지만 강력했어요. 회사도, 학교도, 한 사람의 생동감을 자원 취급해서는 안 되는 거죠. 결국 조직이든 가정이든, 서로에게 존중을 건네야 잘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함께 약해지는 용기 우리는 늘 강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약해져도 괜찮다. 그럼 함께 공명하게 된다”고 해요. 서툴러도, 겁먹어도, 그 모습 그대로 보여 줄 때 오히려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게 더 강하다”라는 문장도 있었죠.
돈, 성적, 성과… 이런 건 수치로 평가되지만, 진짜 결정적일 때
우리를 살리는 건 결국 사람이 주는 따뜻함이나 마음이더라고요.
이 책을 덮고 나서, 저는 작은 시도를 해 봤어요.
“글수집 노트”를 만들어, 책 속에서 인상 깊은 문장들을 옮겨 적었습니다.
이전에는 핸드폰에 스크린샷만 잔뜩 저장했는데, 이제는 손으로 직접 적어 보니
그 문장들이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그리고요,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내가 이해해야 해” 하는 마음을
항상 의식하려 해요. 아만다 리플리는 “타인을 설득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라”고 했잖아요.
저도 옛날엔 “나는 옳고, 너는 좀 틀렸어!”라는 태도를 은근히 갖고 있었는데,
그게 내가 옳다는 증거도 아니고, 관계만 삐걱이게 만든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블로그를 마무리하며, 한 줄만 꼽으라면
“살아간다는 것은 적어도 얼마간의 후회를 쌓는 일이다”
이 문장을 적고 싶어요.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후회하게 되죠.
그렇지만 그 후회는 곧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해요.
『위대한 대화』는 진짜 “대화” 같아요.
몇 년 전에 유행했던 “괜찮아, 잘 될 거야!” 식의 단순 위로나
멋진 문구 하나로 꾸며 놓은 자기계발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한자리에 모여, 삶의 근본을 찬찬히 곱씹고,
결국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구합니다.
마음에 좀 여유가 생길 때 천천히 읽거나,
혹은 막막할 때 딱 한 편만 골라 읽는 것도 좋아요.
“선한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믿으세요.”,
이어령 선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을 살아 낼 작은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다.”
이 말이 꼭꼭 마음에 남아요. 저도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면
그 문장을 되새기면서 살고 싶어요.
여러분도 ‘위대한 대화’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조각들을
꼭 한 번씩 발견해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함께 약해지면서 함께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글수집 노트
“I will do my best at what I’m best at for the benefit of others.”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보다 셀 수 없는 것이 더 강하다.”
“후회의 한가운데엔 비교와 자기 비난이 있어요.”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이상, 제가 노트에 옮겨 적은 구절들이에요. 필요하다면 여러분도 예쁘게 필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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