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치지 않은 편지

시 읽어 주는 동동이

by 동동이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정 호 승 -


1732944A4EE9C40B2184F7

늦은 아점(아침겸 점심)을 먹고 나갈 차비를 했습니다.

오늘이 마감이라는 곳에 취업지원서를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

짜짓기한 이력서도 다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제출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그쪽으로 가질 않았습니다.

이놈아 이력서 낼 곳은 저쪽이여,

내 발에게 이야기를 해주어도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날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2021_1048_0300.jpg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몸은

도서관에 와있었습니다.

도서관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각가지 형태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보며 킥킥 대는 아저씨와

책을 찟어버릴 듯 열중 하는 중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73d8ec4f4c32a3471e75babdb8250d6f

그들 중 한 자리를 발견하고

의자를 땡겨 자리 앉았습니다.

나이가 벌써 서른인데

아직도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게

서글픈거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잡념을 떨쳐버렸습니다.

아마 난 평생 도서관 책상을 떠나지 못할

운명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1337D040507FA1032A1590

대학교 시절 2년 간 일을 했던 곳이

학교 도서관이었습니다.

몇달은 로비에서 책대여를 맡았고

또 몇달은 책정리를 맡기도 하였죠

1층 로비에서 일할 땐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지만

(뭐 당연한 이야기인가요?ㅎ)

짬짬이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아마 뻥 조금 보태서(진짜 쪼금)

그때 읽은 책이 500권은

넘었을 테니 저에겐 돈도 벌고 지혜도 쌓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254A904D53F4BD741819F8

책 대출을 하다보니 재밌는 일이 많았습니다.

첫째로 도서관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눈이 쾡한 한 젊은이는 짬짬이 도서관에 와서

책상에 앉아 1시간씩 자고 갑니다.

또 어떤 넉넉한 풍체의 소유자는 무협지와 덕후만화를

10권씩 매일 빌려 가기도 했지요

(그 사람은 다독왕으로 도서상품권도 받아갔답니다)

201502020220_11170922943227_1.jpg

돌이켜 보면 전 그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책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느끼고,

미래를 상상 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깐요

그런 도서관에 서른이 넘어 가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아마 곧 도서관에 갈 일도 줄어들겠죠.

아쉬워 하는 저에게 도서관은

이렇게 말하겠죠.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매거진의 이전글韓國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