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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는 것

시 읽어 주는 동동이

by 동동이

이 지상에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빈손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동안은

나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대 손등 위에 처음으로

떨리는 내 손을 포개어 얹은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준다는 것

그것은

빼앗는 것보다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이 지상에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

그것은

세상 전체를 소유하는 것보다

부끄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대여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누구에게 준

넉넉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안 도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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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이름 있는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길렀었다. 3년 전 거처를 지금의 다래헌(茶來軒)으로 옮겨 왔을 때 아는 스님이 우리 방으로 보내준 것이다. 혼자 사는 거처라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는 나하고 그 애들 뿐이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었고, 그 애들의 건강을 위해 하이포넥이라는 비료를 바다 건너 가는 친지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오기도 했었다.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어야 했고, 겨울에는 나는 떨면서도 실내 온도를 높이지 않았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이른 봄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둣빛 꽃을 피워 나를 설레게 했고, 잎은 초승달처럼 항시 청청했었다. 우리 다래헌을 찾아온 사람마다 싱싱한 난을 보고 한결같이 좋아라 했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개인 어느 날 봉선사로 운허 노사(耘虛老師)를 뵈러 간 일이 있었다. 한낮이 되자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고 앞 개울물 소리에 어울려 숲 속에서는 매미들이 있는 대로 목청을 돋구었다.

아차! 이때에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난초를 뜰에 내놓은 채 온 것이다. 모처럼 보인 찬란한 햇볕이 돌연 원망스러워졌다.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난초잎이 눈에 아른거려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왔다. 아니나다를까,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안타까워 안타까워하며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했더니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버린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난을 가꾸면서는 산철[僧家의 遊行期]에도 나그네길을 떠나지 못한 채 꼼짝 못 하고 말았다. 밖에 볼일이 있어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가 되도록 들창문을 조금 열어놓아야 했고, 분을 내놓은 채 나가다가 뒤미처 생각하고는 되돌아와 들여놓고 나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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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결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릴땐 몰랐는데 결혼이라는 것이 단순한것이 아님을

실감하곤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일기장을 들여다 보니 서른이 되면

자식이 하나도 아닌 2명은 되어있을 가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난 결혼이랑은 먼 사람이 되어 있다.


어릴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결혼은 조건과 조건이 만나

호감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선택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그런 만남에 부정적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나를 저울에 매달아 무게를 재어보기도 하는 것 같다.

결혼은 나의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일까?


남에게 줄 것이 없어

마음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이 구절을 참 마음에 든다.

우리는 보통 나를 생각하고 남을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비로소 남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가진것이 있으면 남에게 베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것은 상대적인게 아닌가?

내가 천원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천원을 더 바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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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도 후자쪽에 가깝지 싶다.

내가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이 가진것을 가지고 싶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지 싶다.


작게나마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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