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수 있을 때, 쉬어가자.

여러분 연차는 쓰라고 있는 것입니다.

by 애론

벌써 11월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말인즉, 올해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시즌이 되면, 직원들끼리 모여서 하는 얘기가 있다. "휴가 다 썼어?"


어떻게 여러분들은 모두 올해 휴가는 다 사용하셨는지?




나는 그 해의 휴가는 모두 소진하는 스타일이다. 고맙게도 회사에서는 휴가를 못 쓰는 직원들을 위해, 다음 해 2월 말까지 이전 휴가를 소급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휴가를 성실(?)하게 사용하는 직원인지라, 대부분의 휴가를 당해년에 모두 사용한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현실적으로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료와 상사 눈치도 보일 것이고, 갔다 왔을 때 나를 덮치는 쓰나미 같은 일거리도 부담이다.


그러다 보면, 미처 휴가를 쓰지 못해서 "나 아직도 휴가 열흘이나 남았어."라는 이야기를 하는 동료들을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휴가를 가지 못할 만큼 나는 굉장히 바쁘고, 회사에 충실한 사람이다. 어때 나 대단하지?'란 얘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 사람은 휴가가 남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구나? 고리타분한 사람이네'


이러한 생각을 갖고서 휴가를 모두 소진하기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이벤트들과 프로젝트들이 있었지만, 나는 끈기를 갖고 모든 휴가를 성공적으로 소진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삶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

2020년 11월 27일 현재, 휴가가 9일이나 남은 것이다.




동료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의 마음을 모르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2020년 올 한 해는 정말 너무나도 바쁜 한 해였다. 연초를 코로나로 시작해서, 아직까지 그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유행은 계속되었고, 원격근무로 전환이 되었지만, 원격근무를 지원하기 위해 더욱 바빠졌다.


그리고 코로나 상황에서도 신규 프로젝트들과 기존 업무를 포함한 새로운 업무도 진행해야 했고, 팀도 운영을 해야했기에 쉽지 않은 한 해가 되었다. 거기에 조직원들의 이탈 이후, 추가 충원이 되지 않아 리소스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올 한 해를 버텨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휴가는 도무지 소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잔여휴가 9일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예전을 되돌아보면, 나는 쉴 타이밍을 잘 잡았던 것 같다. 이 회사에서 프로젝트 위주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프로젝트 기간 동안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다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여유를 찾고 휴식을 갖는 업무 루틴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잘 쉴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프로젝트로 충분히 바빴던 것을 조직장과 동료들은 알고 있기에, 종료 후 떠나는 휴가는 눈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저 프로젝트 성공시키고 떠납니다 하고,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처럼 훌쩍 떠났던 것 같다.


또, 휴가는 리프레시의 목적이고, 리프레시는 길게 쉴수록 효과가 좋다는 것을 신봉하여, 마치 원래는 일이 없는 사람인것마냥 5일 이상을 휴가를 내곤 했었다. 특히 해외를 갈 경우, 3박 5일처럼 비행기 내려서 짐만 풀고,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 아닌, 충분히 여행지를 바라보고 여유를 즐기도록 1 ~ 2주를 떠나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도무지 쉴 타이밍을 잡지를 하였던 것 같다. 반대로 말해보면 직장생활 중에 올해만큼 바빴던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그렇게 업무에 충실한 스타일은 아닌 거 같았는데 말이다.


이러한 과다한 업무와 쉬지 못했던 사정으로, 올해 번아웃이 왔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지 않고 버텼다. 실제로 안식을 떠나버릴까 고민을 하다가, 여기까지 참아왔고, 현재로써는 괜찮아졌다. 근데, 이게 괜찮은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기로에 선 것 같다. 이대로 휴가를 남길 것인가, 끈기를 갖고 모든 휴가를 소진할 것인가.




사실 최근 들어 업무의 피로도가 많이 줄어들었다. 코로나 관련된 대응은 대부분 준비를 해놓고, 향후 백신 개발되었을 때의 병원 제휴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PM이 되어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현재로써는 계획이 없다. 팀도 2명이 빠졌지만, 추가로 2명이 들어왔고, 감사하게도 그들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훨씬 상회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또한 인원 충원이 2명이 예정되어있다.


여러 상황으로 보았을 때,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다. 바로 쉴 타이밍이다.

근데 갑자기 일이 터지면 어떻게 하지? 갑자기 회사에 확진자가 나오면?


스태프 업무라는 게, 언제 어떻게 폭발적으로 생겨날지를 모르는 업무이다 보니, 맘 놓고 편히 쉬지는 못한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는 더더욱이 완전 오프라인 모드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피셜리, 쉰다는 것은 나에게는 큰 힘을 준다. 물론 쉬는 동안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 일이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 일은 의무라기보다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 쉬는 시간이거든? 나 지금 선의로 하는 거야. 그러니 독촉하거나 부담 주지 말어.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안식 휴가를 보내면서, 하루 30분씩 근무를 해본 적이 있다. 그 시간에 했던 일은 일이 아니라 나에게는 놀이인 것처럼 즐거웠다.)


자 달력을 보자. 대강 12월의 일정은 잡혀있다. 그 일정만 피해서 휴가를 내자. 무엇을 할까?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떠나지는 못한다. 국내 여행을 가볼까? 따뜻한 제주도? 영월로 별을 보러 갈까? 실패했던 여수 여행을 갈까? 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바로 리프레시지.




(글을 써놓고 업로드하려다 보니 다시 한번 대유행이 되었다. 이거 봐, 쉴 수 있을 때 쉬라고 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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