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작은 휴대전화의 화면이 세상의 전부인양 살아가고 있다. 방송도 이제는 집에서 각자 화면을 보고 진행하는 시대가 되었고. 코미디의 대부분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십거리로 삼고 있다. 매일같이 천 명씩 죽어 나가는 현실이 과연 진짜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모르다가도 주변 지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이것이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카톡 메시지의 마지막 인사는 “오늘도 조심 하세요”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지금, 우리는 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업데이트되는 감염자 숫자와 사망자 숫자를 계속 되뇌 이면서 두려움을 일상화 하고 있다. 한번도 안부를 묻지 않던 지인에게 괜히 안부 인사를 전해 보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돌아 생겨난 버릇 이라기 보다는 그저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욕망의 한 단면이 아닐까?
불과 한 달 전 잠들기 전에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통해 나와는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엄지 척’을 날리는 것이 올해의 여행지로 꼽았던 크루즈와 캔쿤 사이의 어디 즈음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제는 일상으로서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그리고 이메일을 매번 주고 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의 한달 넘은 시간을 되뇌이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처럼 만남이 간절 했던 시간도 없을 것이다. 진부한 수식어처럼 이억 만리에 사는 가족이 보고 싶지만, 지금은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 만나기도 어려운 시간을 지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그리고 느낄 수도 없는 태풍의 한 가운데를 지금 막 지나가고 있는 뉴욕은 이제 그 대풍의 꼬리가 얼마나 길게 남을지 걱정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상을 잃어 버렸다는 상실을 완전한 자유를 통해 다시금 얻어 내고자 한다. 미시간에서, 택사스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뉴저지에서, 저마다 이동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을 보면서 저마다 가지고 있는 욕망과 나는 아닐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은 나에게 일상을 되돌려 달라는 어쩌면 가장 개인주의적이면서도 무책임한 표어를 들고 데모를 하는 집단으로 변질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잃은 누군가는 또다른 이별이 싫어서 이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워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커피 한잔의 여유가 필요하다. 너무나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진 우리는 스타벅스에 도착 하기도 전에 앱을 통해 구매해 바로 받아보는 시간의 비정형성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갑자기 느리게 가는 시간과 옛 것으로 치부 했던 모든 것으로의 회귀를 경험 하면서 강력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계 2차대전의 죽음의 공포를 이겨 냈던 “Keep Calm and Carry On”을 우리는 자유로 해석하면 안된다. 조용히 여유를 갖고 다음을 생각하는 자세를 내면화 했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사태를 이겨 나갈 수 있다. “Let’s have a cup of coffee and think about it”배달 노동자의 노력이 깃들어 있는 커피를 열고, 그라운딩을 하면서 커피가 가지고 있는 아로마의 스토리텔링은 장식해 본다. 동시에 따뜻한 물을 준비하고, 자칫 마스크로 변신 할 수 있는 필터를 깔고 뜨거운 물을 조금씩 더하다 보면 크레마가 그려내는 찰나의 예술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을 느끼면서 잠시 밖을 내다보는 여유를 갖자. 오늘, 봄비가 너무 차가운데 이제는 더이상 차가운 봄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c)뉴욕앤뉴저지 | www.nyandnj.com | 글: 최양환 사진: Jerome, Aa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