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이라기 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언젠간 꼭 수녀님 뵈러 슬로베니아 갈거예요!"
2013년 여름, 프랑스 파리 룩셈부르크 공원이었다. 혼자 공원 벤치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사람 구경중이었다. '유럽답게' 돗자리 없이 잔디에 큰 개와 같이 누워 있는 사람, 조깅하는 검정색 머리 한가닥도 없어보이는 할아버지, 그리고 인생샷 찍는 여행객으로 보이는 커플, 등이 눈 앞에 펼쳐졌었다. 그러다가 내 옆에 한 머리두건을 쓴 수녀님을 마주치게 되어 이야기를 하게 시작되었다. 여행하면 이렇게 낯선 사람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처럼 잠시 파리 여행 중이었다. 나는 스페인 일정을 며칠 앞두고 있었고 난 파리지앵(Parisien)들을 구경하며 파리의 정오의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그 수녀님은 슬로베니아에서 왔으며 다음 일정이 아프리카에 한 작은 나라라고 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 활동을 하러 간다는 그녀의 눈은 마치 놀이동산을 앞두고 설레는 아이의 눈빛 같이 빛났으며, 의열단만큼이나 굳은 의지와 사명감도 보였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해를 못했다.
아니 그보다 오히려 인생을 충분히 '재미나게' 못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왜 굳이 열악한 환경에 가서 고생하는지, 왜 수녀의 길을 택해 물질적 풍요와 명성을 포기해야만 했는지. 그 당시 수녀님과 각자의 삶에 대해 나눈 1시간 가량의 대화에서 난 절반 이상을 불평과 불만만 쏟아냈었다. 여행 비용을 거의 대부분 부모님이 도와주셨고, 난 누군가를 책임지어야할 가장도 아니었고, 직장인도 아닌 한량한(?) 어느 한 대학생의 여름방학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반면, 그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커다란 꿈 이야기가 전부였다. 테레사 수녀님와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기할뿐이었다.
한시간가량 대화 끝에 이제 샌드위치를 다 먹었고, 그녀는 이제 가봐야한다고 했었다. 뭔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들어서 막연히 친해지고 싶었다. 이름과 번호 적힌 종이를 받으며 "언젠간 슬로베니아 꼭 가겠다"며 외쳤다. 그녀는 그저 옅은 미소를 짓고 대답도 안하고 자신이 갈길을 갔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곧바로 읽었다: 다시는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표정.
지금도 그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럴 것 같다. 그 때 이후, 무언가 나의 욕심으로 인한 꿈을 좇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욕심과 욕망을 거두고, 다시 한번 '이게 정말 나와 내 주변과 세상을 위한 선택일까?'라고 다시 되묻기 시작하였다. 그녀를 만난 것은 고작 한시간이었지만,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가치있는 삶이 될 수있다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 삶이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것과 다르다. 그리고 봉사하면서 느끼는 자기위안과 자기만족보다 훨씬 높은 차원인 것 같다.
여행의 기억은 사람뿐인것 같다. 그 장소는 잊혀지지만, 사람이 남긴 마음속의 자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눈빛은 지금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나는 물론 그녀를 따라 수녀님이 될 생각 전혀 없다(종교도 없다). 그러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쬐끔 바꼈다.
다음 여행 갈 때, 어떤 사람을 마주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만나게 되면 나도 은은한 향을 남길 수 있는 자취를 꾹 도장 찍고 돌아오고 싶다. 나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