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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ti 아띠 Dec 06. 2016

피할 수 없는 사람들

작년 회사 다녔을 때다. 내 사수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부정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회색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니며 어깨는 항상 축 쳐져있었다. 

시선은 언제나 바닥을 향해있었고 담배 다 피고 자리에 앉을 때는 땅에 꺼질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식사자리에서 "너는 여기 뭣하러 일하냐"라는 말과 함께 우리 직업의 단점을 나열해가며 자기비하하기 일쑤였다. 밥을 자주 얻어먹었지만 되도록이면 자리를 피했다. 신성한 밥상에서는 즐거운 대화가 오고가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이 사수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말을 해도 절대 과장은 아닐게다. 그의 부정적인 기운은 생각보다 강렬했고 블랙홀처럼 나의 긍정적인 기운을 다 빨아들였다. 그의 "내가 너라면 여기 안왔다"라는 습관적인 발언에 나는 행동으로 답변했다. 짧은 회사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던 그로 인해 나는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그처럼 "짜증나지만 어쩔수 없이 같이 있어야만하는 사람들"은 나는 어떻게 다루어야할까.


여기서 나는 '전화위복'이 떠올랐다. 화가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법륜 스님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여러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아간다면, 그 일은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것이 됩니다."라고 하셨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의 환경 탓을 하거나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금물이다. "너도 당해봐라"라는 심정으로 덩달아 같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불행을 자초하는 부메랑이 된다. 그들이 쏟아내는 불평불만을 들어도 나까지 우울한 감정이 들지 않는 훈련을 기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 그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이해하는 연습도 할 수 있다. 아무런 맥락 없이 나오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조금 더 따뜻한 눈빛으로 연민의 손길로 다가설 수 있으며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가랑비 젖듯이 밝은 기운을 전할 수 있다. 

 

매일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행복을 느끼고 삶을 진전시킬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성공한 하루다.

이것이 나의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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