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만화 같이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있는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은 블랙 코미디 요소 때문인지 중간에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코미디 요소의 가벼움은 영화 끝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묵직하고 자욱한 안개가 짙게 깔린다. 손을 휙휙 저어도 안개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메세지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 수록 짙어지는 안개 속에서 그의 메세지를 곱씹고 또 곱씹어 보게 된다.
빙하기가 도랜한 후 17년 째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 여기 안에는 가장 하층민이 살고 있는 꼬리칸부터 앞칸으로 이동할수록 계급이 높아진다. 설국열차는 '미니 지구'라고 할 수 있다. 마치 1991년부터 약 2년 동안 미국에서 진행된 인공생태계 프로젝트 '바이오스피어2'처럼 말이다. 설국열차 안에는 농작물 재배할 수 있는 칸, 수족관, 학교 교실, 사우나, 고급 바, 등... 모든 것들이 집약되어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지구의 축소 형태가 전부 골고루 있어야 하므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균형'이다. 그래서 이 설국열차의 주인인 윌포드는 고의로 주기적으로 꼬리칸의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게끔 계획한다. 그래야 혈전이 벌어져 일정 비율의 사람들이 제거될 수 있다. 마치 산림불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은 생태계 균형을 맞추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것 처럼 말이다.
꼬리칸의 리더 커티스는 남궁민수와 수많은 꼬리칸 사람들과 함께 혁명을 일으키며 앞칸으로 나아간다.
지나간 칸들 중에 한 칸은 학교 교실이었다. 이 학교 교실 장면이 제일 끔찍했다. 아이들은 윌포드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세뇌교육으로 인해 탄생한 순수한 가면을 쓴 괴물들 같았다. 노래가 끝난 후 교사가 숨겨놓은 총을 꺼내 꼬리칸 사람들을 학살한다.
이 열차의 가장 앞쪽에는 윌포드와 그의 엔진이 있다. 수많은 희생과 투쟁 끝에 윌포드와 커티스는 마주하게 된다. 커티스는 윌포드의 '고상한 철학' - 인류의 균형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 을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사회 기득권들이 이야기할 법한 흔한 논리다. 그러다 커티스는 기계 안에서 일하는 꼬리칸 출신 흑인 꼬마를 발견하게 된다.
남궁민수는 열차를 폭발시킨다.
남궁민수의 딸과 기계 안에서 일하던 흑인꼬마 둘만 생존해서 열차를 탈출한다. 그리고 저 멀리 살아있는 북극곰을 보면서 영화의 막이 내린다.
봉준호 감독 영화의 가벼움 속에 숨겨진 공포. 이 공포는 바로 우리 모두가 알고있지만 외면하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는 영화를 '진실과 허구 사이의 진자운동'이라고 표현을 했다. 하지만 난 '기울어진' 진자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이 현실이 영화라는 허구를 통해 비유되었기에 진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뉴스보다 더 공포스럽고 여운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