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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arti 아띠 Feb 01. 2020

마땅히 갈 곳 없을 땐

공공도서관 휴게실

토요일 오후 5시. 서울 한복판에 있는 한 공공도서관에 왔다. 어디가야할지 몰라서 도서관 왔는데, 도서관 단행본 자료실은 이미 문이 닫혀져있었다.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열람실을 갈까하다가 열람실에는 모두 특정 목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 그쪽 어색할것같았다. 나처럼 한량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방 속에 있던 책 한권 꺼내 휴게실로 향했다.


평소에 가지도 않는 공공도서관에 간 이유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낮 일정은 끝이 났고, 사촌들과 저녁약속 때까지 2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애매한 2시간을 때워야했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보통 같았으면 카페나 서점갔을 것이다. 재즈 음악 나오는 별다방에 창가에 앉아 핸드폰 충전하면서 커피 마셨을 것이다. 아니면 교보문고에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둘러보면서 지적 탐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내공이 쌓이지 않으며 보여주기식인 '어설픈 고독 혹은 어설픈 공부'를 피하고 싶었다(게다가 둘 다 소비 유혹이 있는 곳). 어디가야할지 고민하면서 잠시 방황했지만 때마침 지나가는 길에 마침 도서관이 있길래 들어던 것이다.


도서관 휴게실, 이곳은 정말 실용적인 것들만 있었다. 세련된 인테리어라곤 하나도 없었다. 깜장색의 붙박이 의자, 음료수 자판기, 믹스 커피 자판기, 핸드폰 충전기, 그리고 정수기가 있었다. 한쪽 벽엔 20미터 멀리서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커다란 달력, 시계, 그리고 동양화가 걸려있었다. 벽지의 일부분은 떨어져 나갔으며 창가에는 작은 선인장이 있었다. 핸드폰 충전기 4개나 있어서 충전하려고 했지만 전부 고장나 있었다. 컴플레인 걸기에는 어색한 공간이었다(사실 직원 한 명 안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난방은 약하게나마 나오는 것 같았다. 얼어붙은 내 발가락을 녹였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 무언가 열심히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츄리닝입고 공책에 무언가 빼곡히 적는 수험생, 돋보기 안경쓰며 신문을 정독하시는 아주머니, 차가운 벽에 얼굴을 기대 잠이 든 한 중년 남성, 흙색 슬리퍼를 끌고 정수기에 다가서서 텀블러에 물을 담는 할아버지. 적막한 가운데 누군가가 자판기에 음료 마시려고 넣은 동전소리가 전부였다.  다들 나 처럼 혼자 온 것 같았다. 타인에게 1도 관심도 보이지 않는, 서로에게 투명인간인 공간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일까?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도 눈에 띠고 싶지 않을 때, 이 세상에서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 토요일 저녁 공공도서관에 가야겠다.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다. '잠 못 이루는 사람들'. 이 휴게실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각자 무슨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잠 못 이루는 사람들


- 로렌스 티아노



새벽 두 시, 세 시, 또는 네 시가 넘도록

잠 못 이루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집을 나와 공원으로 간다면,

만일 백 명, 천 명, 또는 수 만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예를 들어 잠자다가 죽을까봐

잠 들지 못하는 노인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와

따로 연애하는 남편

성적이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식과

생활비가 걱정되는 아버지

사업에 문제가 있는 남자와

사랑에 운이 없는 여자

육체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


만일 그들 모두가 하나의 물결처럼

자신들의 집을 나온다면,

달빛이 그들의 발길을 비추고


그래서 그들이 공원에 모여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그렇게 되면

인류는 더 살기 힘들어 질까

세상은 더 아름다운 곳이 될까

사람들은 더 멋진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더 외로워질까

난 당신에게 묻고 싶다

만일 그들 모두가 공원으로 와서

각자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태양이 다른 날보다 더 찬란해 보일까

또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그들이 서로 껴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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