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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살리아 Sep 14. 2017

#8. 옷장 속 사라진 아이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그곳에 순백의 옷장이 있었다. 양 문으로 열리는 한 칸짜리 옷장 안에서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자고 있다. 마치 엄마의 배 속에서 잠을 자는 태아의 모습처럼 아이는 그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처음에 아이의 부모는 옷장 속에 숨어 들어가 잠이 드는 아이를 걱정했다. 혹여나 우리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커튼 뒤에 숨고, 테이블 아래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들의 본능적인 행동에 불가할 뿐이다. 태아였을 때 경험한 비슷한 환경을 찾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다.


부모와 분리된 최초의 자신만의 아지트를 갖는 일. 어린 로이의 아지트는 그의 방안에 있던 순백의 옷장이었다.


“로이는 잠들었어.”


아이의 엄마는 오전 내내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오후 2시가 다돼서야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따뜻한 얼그레이 차를 한 잔 마시며 정원에 나와 남편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뭐? 골프채를 또 샀어? 택배? 그래 알았어.”


남편과의 짧은 통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폰이 울렸다. 택배기사였다. 분명 남편이 주문한 골프채 박스가 현관 앞에 놓여있을 터다.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차를 타야만 했다. 넓은 정원은 젊은 부부가 산책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으나 무거운 택배를 들고 걸어 들어오기에는 너무 멀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기억력 저하 속도를 완화시키는 신약을 개발한 남자는 글로벌 제약회사에 원천기술을 넘기고 사천만 불의 현금을 챙겼다. 남자가 개발한 신약은 임상실험을 거쳐 안정성을 검증받으며 시판되었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동종업계에서 남자를 스카우트하려는 물밑 작업들이 이어졌지만 수많은 러브콜을 뿌리쳤다. 남자는 그가 개발한 신약에 대해 로열티 13%를 받고 있다. 더 이상 부의 축적이 무의미해졌다.


그는 한적한 시골에 땅을 매입하여 가족과 함께 살 곳을 마련하였다. 그가 직접 설계한 정원이 있는 집은 두 부부와 어린 남자아이 그리고 애완견 한 마리와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늑했다. 택배 온 물건을 찾으러 가야 할 때만 빼놓고는 말이다.


“현관을 너무 멀리 만들어놨어.”


여자는 투덜대며 레인지로버에 시동을 켰다. 작년에 분양받은 강아지가 그녀의 시동소리에 짖어댔다. 아직은 몸집이 작은 골든리트리버다.


“링고! 로이가 깨 면 잘 달래주고 있어! 엄마 금방 다녀올게!”


차량 유리창을 내려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링고는 금세 짖어대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끝까지 보고, 이내 거실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여자의 차가 현관 가까이에 가자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차에서 내린 여자는 열린 문을 통과하여 바깥으로 나왔다. 역시나 기다란 박스 하나가 현관문 밖에 세워져 있다. 한때는 유능했지만 지금은 골프에 빠진 백수에 불과한,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골프채일 터다. 긴 박스를 끌고 트렁크에 실었다. 다시 레인지로버에 올라탔다. 차를 돌리기 위해 현관문을 완전하게 통과했다. 그리고 다시 차를 돌려 현관 앞으로 들어섰다. 그새 닫혀버린 현관 앞에 차 머리를 들이댔다. 자동으로 달려있는 센서가 동작하지 않았다. 여자는 차에서 내려 들고 있던 현관 키를 눌러보았다.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아. 이거 또 이러네.”


여자는 경비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5분이면 경비업체 직원이 달려와 신원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줄 것이다.




“놀라지 마. 너는 지금 트래블을 한 거야. 이쪽으로 가까이 와볼래?”


웅장한 숲 속에서 한 아이 앞에 남자가 나타났다.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머리 색은 갈색이고, 머리색과 같은 색의 눈동자가 태양빛에 반짝였다. 남자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아이에게 미소를 보였다. 경계심을 갖던 아이는 이내 남자의 손을 잡았다.


“저기 아래 보이지?”


“우리 집인데요.”


“그래.”


“근데 왜 연기가 나요?”


“네가 잠든 사이에 집에 불이 났어. 너무 걱정하지는 마. 저기 저 아저씨들이 금방 불을 꺼주실 거야.”


남자와 어린 로이가 내려다보는 아래로 불길이 일고 있었다. 여자가 잠시 택배를 찾으러 간 사이 벌어진 일이다. 세탁기에서 시작되었다. 작은 불꽃은 이내 세탁실 전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불길을 본 것은 링고뿐이었다. 불길을 향해 짖어대는 것을 현관밖에 있던 여자는 듣지 못했다. 5분 뒤에 나타난 것은 경비업체 직원뿐이 아니었다. 신고를 받고 온 소방관들을 여자는 황당하게 마주해야만 했다.


“이 집. 주인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남편 분께서 신고하셨어요. 실내에 CCTV가 있으신가요?”


“네. 아이방이랑 거실, 부엌, 세탁실에 있어요. 신고라니요? 무슨 일로?”


“세탁기에서 불이 난 거 같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자세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불과 십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집안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소방차 뒤를 따라 차를 몰고 가던 여자의 시야에 불길에 휩싸인 집이 들어왔다. 차에서 내려 미친 듯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것을 소방관이 막아섰다.


“위험합니다.”


“집 안에 제 아이가 있어요!”


여자는 놀라 소리쳤다.


“아이가 몇 살입니까?”


“다섯 살이요.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살려주세요!”


“진정하세요. 아이가 어디에 있었죠?”


“아이방이요. 2층에서 맨 끝방이요. 옷장 안이요.”


“옷장이요?”


“네. 옷 장안에 있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아직은 위험하니까 여기서 기다리자.”


“엄마는요?”


“엄마는 안전하단다.”


“엄마가 걱정할 텐데, 엄마가 날 찾을 거예요.”


“그래. 저 불길만 좀 잠잠해지면 아저씨가 데려다줄게.”


어린 로이는 남자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불타는 집의 모습에 꽤나 놀랐을 것이다.


“무섭니? 다른 곳에 가있을까?”


“아니요. 우리 아빠가 아끼는 집인데, 아빠는 알고 있나요?”


“아빠가 저 소방관 아저씨들을 불렀어.”


“그럼 아빠도 지금 저기 있나요?”


“그래. 엄마랑 같이 있을 거야.”


남편의 차가 현관을 지나 정원을 가로질렀다. 이미 여러 대의 소방차가 그곳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가 일궈온 보금자리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형상이 그의 동공에서 일렁였다. 끔찍했다. 남자는 잔디밭에 주저앉아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그녀 앞에 천에 쌓인 링고를 들고 한 소방관이 서있었다. 링고의 금빛 털 대부분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이 방 옷장 앞에서 발견했습니다. 아드님을 찾고 있었던 거 같아요. 심각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희가 키우는 강아지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감 싸며, 대신 대답했다.


“로이는요? 제 아이는요?”


여자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집에 있는 모든 옷장을 다 뒤졌는데 없었어요.”


“그럴 리가요! 분명 옷장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남편의 품에서 여자가 소리쳤다.


“여보! 진정해.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야?”


“로이가……. 저 안에 로이가…… 우리 아이가……”


“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내가 찾아올게. 걱정 마.”




“이제 좀 불길이 잦아든 거 같네. 그만 가볼까?”


“아저씨도 같이 가나요?”


“아저씨는 아저씨 집으로 돌아가야지. 나를 만난 건 비밀이야!”


“아저씨 집은 어딘데요?”


“여기서 아주 멀리 있어.”


“제가 갈 수 없어요?”


“지금은 같이 갈 수 없어. 그렇지만 우린 나중에 친구가 될 거야.”


“언제요?”


“음, 한 이 십년 뒤? 네가 아저씨처럼 이렇게 크면! 그때 아저씨처럼 갈색 눈을 가진 친구를 마주치게 될 거야.


“아저씨는 늙지 않나요?”


“하하. 그래. 아저씨는 안 늙고 네가 커서 아저씨 앞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게! 아저씨가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꼭 반드시 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너의 정체를 밝혀 줄래?”


“내 정체요?”


동그랗게 눈을 뜬 어린 로이에게 남자는 친근하게 다가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도 그 갈색 눈의 친구처럼 트래블을 한다고.”


그 말을 남기고 남자는 어린 로이의 눈 앞에서 안개처럼 사라졌다.




“아마 그때 로이가 다섯 살이었을 거야.”


“아, 그때 처음 로이는 트래블을 한 거군요. 무사히 집으로는 돌아간 거겠죠?”


“그랬지. 뒤뜰에 있는 것을 소방관이 발견하고 아이의 부모에게 데려갔지. 아마 로이는 자다 깨서 밖으로 나와 놀고 있었다고 얘기를 했을 거야.”


“다행히 해피앤딩이네요.”


제이슨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일었다.


“대신 그의 아지트가 검게 불타버렸지. 아마 그 이후로 로이는 흰색 성애자가 된걸 지도 몰라.”


“하하. 얘긴 들었어요. 집안이 온통 흰색이라고. 근데, 그때 로이 앞에 나타났던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건, 오웬이었어.”


제이슨의 물음에 카일이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에서 온 오웬이었지. 오웬은 사고가 날 줄 미리 알고 로이 앞에 처음 모습을 보인 거야.”

 

“오웬이요?”


“그래. 오웬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시간대로도 트래블이 가능해. 우리와는 다르지.”


“그러면..?”


“그래. 오웬은 타임 트래블러야.”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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