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두 팔을 멀리 벌려 품에 안으려면 성인 남자 열 둘은 족히 필요한 둘레의 나무가 있다. 아주 오래전 태초부터 그곳에 우뚝 서 스스로 자라난 것처럼 우직함이 느껴진다. 몸통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이, 힘차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여러 갈래의 굵은 줄기가, 그 사에 풍성하게 청록 빛을 발하는 잎사귀들이 그 세월을 증명해준다.
우직한 한 그루의 나무 주변에는 발목까지 자라난 연두 빛의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간지럽게 발목에서 나부끼는 사이, 나무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고 서있노라면 드넓은 초원은 어머니의 품처럼 평온하다. 그곳에서 인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완벽한 자유다. 거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모든 세포의 멈춤을 제어한 순간 찰나의 적막을 느낀다. 이내 천천히 조금씩 숨을 초원 밖으로 내뱉는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직 살아있다. 바지 뒷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절묘한 타이밍이네.”
로이는 영상통화로 걸려온 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전화를 받을지 말지를 고민했다. 또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이 있었다. 그리고는 결정했다.
“파데우스. 어떻게 알고 전화를 했어요?”
“하하. 로이! 뒤에 보이는 나뭇결을 보니 루아하에 있는 것 같네!!”
“귀신같네요.”
“왠지 루아하 국립공원에 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 심바를 보았나?”
“글쎄요.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네요.”
로이의 아이폰 액정화면에 모습을 보인 파데우스는 탄자니아인이다. 그곳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흑인이었지만 검은 피부와 검은 머리, 그리고 검은 눈동자를 가지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 그는 백색증 환자로 불리는 알비노였다.
그의 피부는 백인보다 하얕고 자외선에 치명적이었다. 그의 머리는 금발보다 더 빛났다. 그의 눈동자는 옅은 붉은색에 동공은 불안하게 늘 흔들렸다. 그는 탄자니아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순백의 흑인들을 위한 자선단체의 단장을 맡고 있다. 그것이 그의 숙명이라 여겼다.
“그래, 언제 이쪽으로 넘어올 건가?”
“지금 바로 당신 눈 앞에 서있으라는 얘긴 거죠?”
“지금 내 집무실에 있네.”
로이는 파데우스와 전화를 끊었다. 다시 나무에 기대서서 지평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또 한 번의 들숨과 날숨이 있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당신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트래블러: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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