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계단

너와 나의 냉정과 열정 사이

by 아살리아
여기에 쓰여지는 글들은 제시해주는 음악을 틀어 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글 속으로 더 빠져들 수 있어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음악을 알고 있다면,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악을 마음속으로 플레이하세요. 자. 이제 음악이 준비되었나요?





#사운드 오브 브런치 제 4화 - 두 개의 계단

#준비할 음악: something about us by Daft Punk



음악을 플레이하세요.



It might not be the right time

I might not be the right one


But there's something about us I want to say

Cause there's something between us anyway


...










여기, 두 개의 계단이 있다. 하나는 잘 알려진 명소를 오르는 계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잘 알려진 명소를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연결해 주는 계단이다. 자. 선택의 시간이다. 시간이 없다. 어느 곳으로 첫 발을 내딛겠는가.


선택은 언제나 늘 간결하게


선택은 언제나 늘 간결하게. 간결한 선택은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리고 결국엔 그 간결한 선택 뒤에 남는 결론은 딱 두 가지로 정해진다.


아쉽거나.


만족하거나.


여기에 후회라는 감정은 없다.




계단을 오르면 오를수록 거리의 사람들은 점점 작아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늘 흥미롭다. 역시나 호기심이 고소공포증을 앞서간다. 내게 호기심은 멀미도 앞서가고, 대인기피증도 앞서간다.


여기는 이탈리아 피렌체, 조토의 종탑이다. 나는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 전망대 대신 맞은 편에 있는 조토의 종탑을 선택했다. 자연스럽게 여기로 발길이 다았다. 오르면 오를수록 계단이 좁아진다. 역시나 호기심이 폐쇄공포증을 앞서간다. 종탑의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 곳은 누군가에겐 쉼터로 누군가에겐 사랑을 속삭이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조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


조토의 종탑. 사진으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중간중간 보이는 창문이 위치한 곳이 계단이 끝나고 넓은 공간으로 이어지는 부근이다. 중간 쉼터는 이렇게 오르는 동안 몇 번을 마주하게 된다. 와. 다 왔나 봐. 하는 순간이 여러 번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종탑의 꼭대기까지 오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찔하다. 마지막 중간 쉼터에서 저 아래너머로 그간 지나쳐 올라 온 쉼터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보인다


반 쯤 모습을 드러낸 두오모 성당


거의 다 올랐다. 건너편 두오모의 빨갛고 둥근 돔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다음 사진은 마지막 옥상에서의 사진이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 동굴 같은 공간이 한 차례 나온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있다. 계단을 오르느라 숨을 고르는 사람, 들고 온 물로 목을 축이는 사람. 한 참을 그곳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왜 나가지 않고 있는 거지. 여기까지 올라 왔으면 한시라도 빨리 바깥 옥상으로 나가 경치를 구경하고 싶을 텐데. 두오모가 저 너머에 있는데. 마음의 준비라도 하라는 건가. 왜 다들 거기에 앉아 있는 거야. 어서 저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나가라고. 사막의 오아시스가 코앞이야.





그랬구나, 그랬어. 옥상은 땡볕이 따로 없었다. 단지 태양과 코딱지 만큼 더 가까워졌을 뿐인데, 그 곳 위에는 너무 뜨거웠다. 그러나 뜨거움을 극복하고라도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되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와. 다 올라왔다. 얏호! 브라보 피렌체! 브라보 두오모!



두오모 성당 쿠롤라 전망대



이탈리아 피렌체,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 본 두오모 성당이다. 두오모 대성당이라고도 하고, 산타 마리아 델 피오네 바실리카라고도 하는 우리 한테는 두오모 성당으로 알려져 있는 그 곳. 붉은 돔, 쿠폴라 전망대, 그리고 그 곳에 작게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명소를 택해 올랐고, 나는 명소가 보이는 곳을 택해 올랐다. 그들은 저기 너머에 서있고. 나는 이곳에 서있다. 누구의 선택이 훌륭했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나는 나의 선택에 만족했을 뿐이다.

손을 높이 흔들어 그들에게 인사한다.

헤이~ 거기! 안녕~


쿠폴라 전망대를 오르는 계단은 463계단, 조토의 종탑은 414계단이다. 그렇다고 내가 단순히 49개의 계단을 덜 오르기 위해 조토의 종탑을 골랐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없길...



두오모 성당 내부 천장 모습


이 한 장의 사진을 보자. 여기 이 놀라운 명작은 두오모 성당에서 내부 천장을 올려다 보고 찍은 사진이다. 시간은 다시 조토의 종탑을 오르기 전으로 돌아 간다. 오전 내내 쇼핑을 하느라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두오모 성당 입구에 서있을 수 있었다. 쿠폴라 전망대를 오를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성당으로 진입했고, 전당대로 오르는 입구를 재빨리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천장 위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 그림에 압도되어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캬 디테일이 정말 예술 아니냐. 매직아이처럼 빨려 들어간다 저 구멍으로 슝.)


그리고 결국 쿠폴라 전망대를 오르지 못하고 조토의 종탑 입구 줄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어쩌면 선택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나만큼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열정을 위해 여기 이 쿠폴라 전망대에서 바라 본 조토의 종탑사진을 내 기꺼이 선물한다. 어떤가. 스크롤을 위로 올려 아까 그 사진과 비교해 보시라.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 본 두오모 성당의 쿠폴라 전망대 모습과 쿠폴라 전망대에서 바라 본 조토의 종탑 사진. 뭐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고, 선택에는 정답이 없다.


결국 나는 오르지 못한 쿠폴라 전망대를 올랐던 걸까. 아니다. 이 사진은 당시 여행을 함께했던 언니들이 다음날 아침 일찍 쿠폴라 전망대를 올라 찍어 온 사진이다. 나는 전 날에 마신 와인 한 병에 꽐라 되어 아침 일찍 준비하는 언니들을 바라만 보았다. 간헐적으로 쿠폴라 전망대, 쿠폴라 전망대를 되뇌였으나 좀처럼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질 못했다. 이 컨디션으로 463개의 계단을 오를 엄두도 안 났고, 행여나 계단 오르다가 괜히 남에 문화유산에 오바이트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이렇게 또 선택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결정이 된다.

나의 냉정과 열정사이는 다음으로 기약했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적는 저와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보게 될 분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자. 이제 플레이를 멈추세요. 저의 사운드 오브 브런치 4화는 여기까지 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라하의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