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와 지피 그리고 라파

사랑을 다시 배우다

by 아살리아
여기에 쓰여지는 글들은 제시해주는 음악을 틀어 놓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온전히 글 속으로 더 빠져들 수 있어요.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음악을 알고 있다면, 눈을 감고 잠시 그 음악을 마음속으로 플레이하세요. 자. 이제 음악이 준비되었나요?





#사운드 오브 브런치 제 8화 - 엠마와 지피 그리고 라파

#준비할 음악: Wild Horses by Alicia Keys (Feat. Adam Levine)



음악을 플레이하세요.



Childhood living is easy to do

The things you wanted I bought them for you


Graceless lady you know who I am

You know I can't let you slide through my hands


Wild horses couldn't drag me away

Wild wild horses couldn't drag me away


...









"일어나. 엠마. 우리 지금 출발해야 돼"


누군가 다급히 엠마를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잠꼬대하듯 온몸으로 귀찮음을 표출했다. 그가 사라지고 눈을 감은 채 그녀는 나지막이 내게 속삭였다.


"야. 가야 되냐?"


우린 지난밤을 달려 이곳에 왔다. 주차장이라고 도착한 그 곳 하늘 위로 지상 최대의 별천지를 보았다. 주변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은 하늘 위의 보석들을 더욱 반짝이는데 일조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우주의 중심에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별의 소리를 느꼈다.


다시 눈을 떠보니 차 안에서 굴러다니는 내 양말이 보인다. 주섬주섬 어제 벗어 던진 양말을 주워 신는다. 날은 밝아 있었다. 운전석에서 잠이 든 엠마도 나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뒷좌석 창문 너머로 배낭을 메고 차에 걸터앉아 있는 지피와 라파의 뒤통수가 보였다.


"쟤넨 언제 일어났대?"

"나도 모르겠다."




내가 미국 서부에 있었을 때, 엠마는 미국 동부에 있었다. 같은 나라이긴 했지만, 시차가 3시간이나 차이가 나서 잠깐 만나서 브런치를 먹고 헤어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렇지만 우린 서로 많은 의지가 되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서부로 날아왔다.


"나 햄버거 먹고 있는데, 어떤 홈리스가 오더니만 나한테 홈리스냐고 묻더라"


패스트푸드점에서 엄청 크고 낡은 캐리어를 옆에 두고 햄버거를 먹고 있는 그녀와 재회했다. 그녀가 온 이후로 내 미국 생활은 유쾌해져 갔다.


마이애미에 있을 때 발리볼 동호회에서 친구를 만들었다는 그녀는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그와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6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녀의 친구를 만났다. 그와 그녀의 따뜻한 포옹에서 나는 그가 단순히 발리볼만 하고 헤어지는 친구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피는 콜롬비아에서 온 미국인이었다. 옷은 정말 못 입었다. (미안 지피) 엠마는 그의 옆모습이 멋있다고 얘기했다. 엠마가 아무리 그 앞에서 똘끼짓을 해대도 (미안 엠마) 평온함을 유지하는 지피를 보고서, 나는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다.


"안녕. 반가워"


지피 옆에는 그의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걸 자랑스럽 생각하는 친구였다. 인종이 다른 사람끼리 결혼하면 유전자가 좋은 것만 받고 아이가 만들어진다며 아주 진지하게 설명을 해줬는데, 늘 약을 한 사람처럼 기분이 업되어 있는 그가 진지해지는 모습은 너무 웃겼다.


그렇게 엠마와 지피 그리고 라파와 함께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왜 그래 라파?"


그의 손에는 부러진 선글라스가 들려있었다. 이틀 전, 아침부터 나를 깨워 부산스럽게 선글라스를 사야 된다며 서둘렀다. 나는 폭탄테러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그를 따라 나선 이른 아침의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린 열려 있는 상점을 다 돌았다. 모델 일을 했다던 라파는 지피와 다르게 유난히 패션에 신경을 쓰던 친구였다. 어떤 게 좋은지 연실 써가며 묻는 그에게 대충 골라준 선글라스였다. (미안 라파)


옷을 못 입는 지피와 똘끼짓 하는 엠마, 부러진 선글라스를 손에 든 라파와 함께 우린 5시간째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고 있다. 주차장이 있던 힐에서 아래로 3시간을 내려와 2시간째 평지를 걷고 있다.


그랜드캐년. 그날 우리가 걸었던 곳.


사진 찍는걸 나보다 더 좋아하는 라파는 연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고 나와 엠마는 이상하게 기분이 업되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던 거 같다. 저 너머 어딘가에 우리의 Campground가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은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의 하바수파이 인디언 빌리지에서 캠핑을 하는 거였다.


내려가는 길에 올라오는 많은 여행자를 마주한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얼마나 남았는지 물으면 정확하게 짚어준다. 한국에서의 거의 다 왔어요라는 가식적 멘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선.


코스를 쭉쭉 내려가면서 후에 올라 올 것을 걱정했다. 우리의 일정은 캠핑 2일이었는데 사실 예약을 하지 못했다. 여행 일정을 혼자서 계획한 지피다. 야무지게 엑셀로 짜 놓은 그의 스케줄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우리 셋은 그를 믿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약을 못했어도 이미 힘들게 내려왔으니 하루 정도는 묶고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불쌍한 표정 강습을 시켰다. 정말 대책 없이 원주민들이 사는 인디언 빌리지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밤은 추웠다. 해안가 도시는 해가 지면 무섭게 돌변한다. 한 낮에 열심히도 구석구석 여기 이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쏜살같이 해는 숨었고, 우리 중 주차를 해둔 건물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추위에 벌벌 떨던 우린,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불 켜진 바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길을 여러차례 헤매다 발견한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바.


데낄라 한잔에 몸을 녹이고.




"오늘은 엠마와의 마지막 밤이야.

그래서 우린 파티를 할 거야.

비행시간이 일찍이니 너희는 자고 싶으면 자도되."


한 박스의 스텔라. 엠마는 시간이 없다며 마구 들이킨다. 라파가 음악을 틀어주었다. 레게풍의 댄스 뮤직이라는데 내가 듣기에는 슬프다.


"슬퍼. 딴 걸로 바꿔줘."

스텔라와 모델로, 몬스터와 스타벅스커피와의 조화, 우리들만의 마지막 파티.


지피와 라파는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고, 엠마와 나란히 누워 얘길 나눴다. 내일이면 우린 다시 이별이다. 라스베이거스, 그랜드캐년,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그렇게 그들과 함께한 서부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추워서 몸을 녹이러 들어갔던 샌프란시스코의 한 커피숍.


"라파. 저기 저 여자들 중에 누가 제일 예뻐?"


추워서 몸을 녹이러 들어갔던 커피빈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 라파는 동양인중에서 한국인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친구인데, 갑자기 외국인들의 안목과 한국인들의 미의 기준이 정말로 다른지 궁금해졌다. 그 무리들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니, 무리에서 벗어나 화장실 앞에 줄을 서 있는 여자가 제일 괜찮다고 그런다. 내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저 여자? 하니까 깜짝 놀라며 보면 어떡하냐고 손가락질하지 말라고 그러는 게 너무 귀엽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생각해도 라파가 고른 그 여자가 제일 나아 보인다. 인종을 넘어서 객관적 미의 기준은 다 똑같구나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있을 때쯤 그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근데 저 여자보다 너가 더 예뻐"

"푸하하. 내가 더? 나도 알아."


"너가 알고 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다른 누군가 너에게 말해 주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게 예쁘다고 말해 준다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결국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엠마가 그녀를 예쁘다고 말해주는 지피를 만났듯이 말이다. (그들은 결국 2년 뒤 결혼을 했다.) 그날의 아주 추웠던 샌프란시스코의 한 커피숍에서 나는 라파로부터 사랑을 다시 배웠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적는 저와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보게 될 분들과의 소통과 공감의 연결고리가 되길 희망합니다. 자. 이제 플레이를 멈추세요. 저의 사운드 오브 브런치 8화는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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