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난 네가 필요해.'라는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사실은 꼼짝없이 들키고만 것이었다. 입술만 달싹이다가 결국,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어."
이 관계는 이걸로 끝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마지막이었겠지만. 마음을 질끈 동여매었다.
나의 외로움을 채우고 싶어서 그를 곁에 두었었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상관없었을 만큼 절박하게 외로웠다. 그때에 나는 그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굳이 과거형인 말로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의 삶이 나의 삶과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와는 너무 다르게 살아온 사람. 같이 있어도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그 사람과 함께 하면 내가 지금까지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세상이 망가질 것 같았다.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였다. 관계가 점차 무거워질수록 나는 더욱 선명하게 도망치고 싶었다.
사랑은 나의 세상을 기꺼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끝내 그를 믿지 않았고 그가 살아온 인생을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믿음을 주지 못한 그 사람을 탓하진 않는다. 그 사람을 믿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았으니 분명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느 때에는 보고 싶었고, 그가 속삭이는 말들이 달콤했고, 그걸 해주는 그가 좋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르다. 필요해야지만 곁에 둘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딱히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다. 그는 그걸 간파하였다. 나는 '그'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넌 내가 필요 없잖아."
어느 때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내가 필요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또 스쳐간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면서. 살면서 어느 순간엔가 만나리라 기다리는, 서로가 서로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