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앞에는 병원이 많다. 진짜 많다. 개수로만 치자면 병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회사가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바닷가에는 횟감이 많아서 횟집이 많고, 도축 시장에는 고기가 많아서 정육식당이 많은 것처럼 회사 근처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병원이 많은 걸 테지. 병원 진료과목도 참 다양하다. 내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마취통증의학과, 치과, 신경정신의학과, 피부과... 수많은 병원 간판을 구경하다가 회사에는 왜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은 걸까 생각했다.
분명 건강과 무언가를 바꾸고 있기 때문일 거야. 자기도 모르는 채, 혹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책임감, 성취감 또는 욕심 때문에,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관성 때문에. 잘하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나를 돌보는 건 잠시 잊다 보니 건강이 무너진다. 결국 잘해보려다가 나를 망치는 모순에 빠지곤 한다.
"그렇게까지 본인을 몰아세우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잘하고 있고, 또 잘해나갈 거니까."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다니고 있는 정신과 선생님이 말했다. 그냥 좀 그러면 어때서,라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딱 봐도 심각한 거북목이다. '저러면 척추 건강에 안 좋을 텐데.'라고 혼자 생각하다가 '아, 맞다. 나는 정신 건강이 안 좋아서 치료받으러 온 환자였지.'라고 깨닫는다. 나는 뭐 얼마나 바르다고 다른 사람 삐딱한 자세까지 걱정하고 있나.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뭐 묻은 개가 바로 나 올 시다.
평생을 바르게 착하라고, 그게 좋은 거라고 주입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바른 것만 착하고 좋은 건 줄 알았다. 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그럭저럭 제 몫은 하면서 세금도 착실히 내는 사회인이 되었다. 하지만 밝고 건강한 국가 사회 건설에 이바지하는 사람은 되었지만 행복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증 약을 먹어야 하고 수면제 없이는 쉬이 잠에 들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손해 봤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내가 건강을 버리면서 일을 해봤자, 내 월급은 크게 바뀌지 않는데 병원비만 늘어가는 것도 그렇고. 그런데 참 이상하다. 너무 바르게 살려다가 아파서 병원을 가는데, 병원 간판들은 하나 같이 더욱 바를 것을 외친다. 바른○○병원, 올바른□□병원, 참바른◇◇병원, 무척바른△△병원...
사전에 '비뚤다'의 뜻은 '바르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라고 되어있다. 바르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내 한쪽은 기울어지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으려 할수록 마음은 더 불안정해졌고 슬퍼졌다. 그냥 제대로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면 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어쩌면 이렇게 기울어진 상태도 나쁘지 않을지도. 거북목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은 적어도 올곧은 자세에 대한 강박이 없는 만큼 편하게 환자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진료를 받는 입장에서도 대나무 같이 꼿꼿한 사람 앞에서는 나의 밑바닥에 닿은 마음까지 꺼내놓기 어려웠을 것 같다. 선생님과의 진료는 그냥 거북이랑 대화하는 느낌이라 편안하다.
바르지 않아서 사랑받는 것도 많다. 피사의 사탑에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도, 탑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특별해서 일거다. 유명한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어딘가 물결치듯 불안하다. 흔들바위가 유명한 것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부르는 게 값인 소나무 분재도 이상한 모습으로 꼬여있을수록 아름답다고 칭송받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의 내면에는 꼬이고, 흔들리고, 불안하고, 기울어져 있는 것들을 특별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모두의 내면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그런 구석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그래, 좀 비뚤면 어때. 나는 좀 기울었고 흔들리고 불안하고 어딘가 꼬여있지만 이대로도 완벽한 존재이다. 모순적이게도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한 인간이다. 바르게, 올바르게, 참 바르게, 무척 바르게 살아봤자, 완벽에 도달할 수 없는, 도달할 수 없어서 완벽한 인간이다. 나 하나 삐딱하게 산다고 지구가 멈추는 것도 아닌데, 좀 비뚤게 살지 뭐. 하물며 지구의 자전축도 기울어져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