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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Nov 30. 2022

체감온도 38도에 털모자를 쓴 남자

비로소 코 끝이 싸늘한 계절이다. 갑자기 찾아온 영하의 온도에 얼굴이 어는 듯하다. 여름옷은 정리하고 겨울 옷을 꺼내어 놓느라 옷장 정리를 하다가, 문득 지난여름에 보았던 그 남자가 생각이 났다. 그날은 뜨겁고 습했다. 목덜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내쉬는 공기에 마저 숨이 턱 막혀 어지러웠다. 일기예보에서는 체감온도가 38도라고 했다.


정말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밑에만 있고 싶은 날씨였지만 일정 때문에 외출하게 되었다. 조금 더 걸어 나가면 한 번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햇빛이 부담스러워서 갈아타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지하철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 만큼, 지하철 플랫폼은 후끈했. 코 잔등에서 식지 않는 땀에 화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빨리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가득 찬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시선 끝에서 그 남자를 보았다.


두꺼운 털모자를 눈썹까지 내려쓴 남자.


처음엔 뜨악했다. 미친 거 아냐? 이 더위에? 그러나 이내 궁금해졌다. 무슨 사연일까, 핑글 돌 정도로 뜨거운 날에 앙고라 털모자를 쓴 연유가 무얼까. 덥지 않을까? 이렇게 찌는 날에도 덥지 않다면, 부럽구나... 하지만 겨울에는 대체 얼마나 추울까. 혹여 건강 문제가 있는 걸까? 병이 있다고 하기엔 요즘 패션에 꽤나 신경을 쓴 차림새였다. 패션을 위해 더위도 참아내는 중이라면, 좀 멋지다고도 생각했다. 추구하는 걸 위해 원초적인 부분을 참아낼 수 있다는 점이.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를 맞이하여 앙고라 니트를 꺼내다가 그 한 여름에 보았던 사람이 떠올랐다. 추위를 많이 타시는 분이었다면 이 겨울은 어찌 내고 계실는지. 멋쟁이였다면 겨울에는 여름과는 반대로 시원하게 입고 지내시는지. 모쪼록 건강하고 뚝심 있게 살아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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